Holy Life
25-5.09
본문: 히브리서 12:12-13절
제목: 훈련의 목적 2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으로 믿음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의 갈 길을 곧고 바르게 하시며...
우리의 잘 못된 죄의 모든 습성들을 고치십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고 괴로워도 힘을 내라...
내가 함께할 것이다.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일으켜 세우라...
내가 능력의 손길로 인도할 것이다.
힘들고 어려워서 좌절되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일어서라 말씀하십니다.
이 고난과 좌절과 어려움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허락한 것이다!
그러니 오직 믿음으로 내 앞에서 바르고 곧은 모습으로...
모든 불순종의 모습들을 회개하고 고침을 받아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열매 나눔 재단을 이끄는 분의 간증입니다.
"조직 신학 교수를 꿈꾸던 신학교 3학년 때, 형님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등록금을 내기는 커녕 졸지에 형님의 부채를 떠맡은 부모님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결국 신학교를 포기하고 과일 장사를 시작했고,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는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부족한 데다 내성적인 나를 하나님은 정말 쓰시고 싶었나 봅니다.
하나님은 그 분 백성으로 쓰시기 위해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저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연단은 4년간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모든 꿈이 무너졌고, 빈털터리가 되었으며, 모든 사람과 결별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더 많았습니다.
받은 축복이 더 많았습니다.
사실 형님이 진 빚은 내가 감히 갚을 생각도 못할 만큼 어마어마했는데...
4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무너진 자존감을 세우며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 탈북자 사역의 기초를 거기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장사 기술과 경영 방법을 배웠고 훗날 '열매나눔재단'을 통해 그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은...
너무 힘들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억울해하던 4년간의 그 광야 세월이었습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그 고난은 반드시 지나가고...
그 고난은 연단으로 나를 하나님 앞에 거듭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과정은 길고 험한 길입니다.
사단 마귀와 끊임없는 전쟁을 해야 하는 광야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을 다시 펴고 오뚜기처럼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지혜와 힘으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다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징계와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소망하던 하늘나라의 주인공으로 서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유명한 콜리지라는 사람에게 한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평소 콜리지를 존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의 주제가 어린아이에게로 옮겨졌습니다.
그때 방문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어린아이들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아이들이 일찍부터 자기 스스로 결심을 하는 법을 배우거든요.
어린아이들이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완전하게 키워 나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믿어요."
여기서 콜리지는 그 사람의 말을 중단시켰다.
우리 꽃을 좀 보러 갈까요?
이렇게 말하고 콜리지는 방문객을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정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방문객은 그의 정원을 한번 둘러보고는 놀라서 외쳤습니다.
"아니! 왜 여기는 잡초들밖에 없지요?"
"여기도 예전에 꽃들로 가득했었지요. 그러나 금년에는 손질을 안하고 일부러 내버려 뒀습니다. 자기들이 자라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고, 정원이 어떤 꼴이 되는지 한번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꼴이 되었답니다."
여러분!
훈련이 없으면 교육이 없으면 결코 우리 삶은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 없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이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훈련하시는 신앙의 훈련들을 통해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정원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세심하신 사랑과 배려와 관심을 받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정원으로 우리의 마음 밭을 다듬어 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 밭에 자라난 모든 거짓되고 더러운 악한 마음들을 제거하며 오직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아름다운 밭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5.08
본문: 히브리서 12:10-11절
제목: 훈련의 목적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할 때에...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녀는 그 아버지를 싫어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아버지를 공경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징계하실 때에도...
진정한 믿음의 자녀라면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깨달아 하나님 뜻에 더욱
복종하고 순종하며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훈련하시는 오직 유일한 이유는...
곧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우리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훈련하시는 것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잘 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시고 훈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을 위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까?
1. 첫째는 순종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순종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우리는 결코 훈련되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약성경에서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순종,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순종하면 축복과 생명이지만...
불순종하면 저주와 사망이라는 사실을 계속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은 쉽지 않습니다.
순종은 훈련되지 않으면 실천하기 쉽지 않습니다.
마치 야생마가 조련되고 훈련되어서 명마가 되는 것처럼,
주인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말이 되는 것처럼 훈련되고 조련되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론 고난을 통해서, 어려움을 통해서 순종의 훈련을 하십니다.
2. 둘째는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있는 세상의 더러움, 추악함, 악함을 제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세우기 위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야곱의 가정이 세겜이라는 곳에 머물러 있을 때 야곱 가정에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딸 디나가 세겜의 딸,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세겜 추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기는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 디나의 오라비 즉, 야곱의 아들들이 격분하여서 거짓말로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는다면 둘이 결혼시킬 수 있다고 한 후에 할례를 받은 세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합니다.
남자들을 다 죽이고 노략까지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야곱 가정에 위기가 닥칩니다.
주위에 있는 많은 족속들이 몰려들어 야곱 가정을 죽이려고 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엄청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때에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그곳에 가서 단을 쌓으라 그리고 너희 집 사람들과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야곱의 가정 안에...
그 아내들, 자식들 그리고 함께한 자들 가운데 하나님 외에 다른 이방의 신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우상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깨끗케 하고 신앙을 회복함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준비하고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야곱 가정에 딸이 강간을 당하고 아들들이 잘못된 행동으로 큰 위기가 닥쳤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야곱 가정을 깨끗케 하셨고, 이것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온전히 회복하는 계기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가 곧 축복이 된 것입니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주위에 그 살기등등했던 여러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두렵게 하심으로 야곱의 가정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고난과 징계는 오히려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온전하게 신앙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3. 셋째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결국 징계와 믿음의 훈련을 통해 의의 열매,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것은 징계와 믿음의 훈련을 통해 우리를 연단시키신다는 뜻입니다.
그 믿음의 연단은 결국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만들고...
그 믿음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여러분!
(주) 한국 도자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기 그릇 생산 업체입니다.
이 회사에서 만들어낸 본 차이나 라는 이름의 그릇들은 영국 왕실에서도 인정해서 쓰는 그릇입니다.
건실한 업체이자 세계 5대 도자기 메이커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김동수 회장이 아버지 대신 이 회사를 물려받았을 때는 사정이 많이 달랐습니다.
교수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마저 접고 내려간 고향 땅에서 물려받은 회사는 사채 빛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매출의 40%를 이자로 내야 하니 원금은 갚을 도리가 없고 직원들 월급조차 제대로 줄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빚만 갚게 해준다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겠다고 서원까지 했습니다.
이때 만나게 된 장인어른은 김 회장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설교를 했습니다.
“시련은 연단의 과정일 뿐 신앙인은 반드시 승리하네.”
이 설교에 힘입어 김 회장은 죽을힘을 다해 회사를 꾸렸고 마침내 빚은 모두 청산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숨을 내놓겠다는 자신의 서원이 생각나 빚을 청산하던 날 죽을 각오까지 했던 김 회장은 그 이후의 삶을 덤으로 생각하고 더 큰 발전을 위해 기쁘게 헌신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실패인 것 같았던 김 회장의 인생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해 눈부신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실패를 인정해 버리면 그 후에는 좋은 날들을 보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이후에 올 더 큰 영광을 바라보며 그 고난을 이겨내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고...
아름다운 의의 열매, 평강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지금 여러분 앞에 겪고 있는 징계와 같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우리를 훈련하시되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순종의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의와 평강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 아래서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는 훈련을 해 나가는 귀한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말씀해 주시는 음성만을 듣고 그 음성에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심령과 삶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5.07
본문: 히브리서 12:5-9절
제목: 신앙의 훈련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까지 신앙의 경주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필수입니다.
바로 이 신앙의 훈련에 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훈련 방법은 고난 혹은 징계와 같은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신앙의 훈련에 임해야 할 것인지?
오늘 본문 말씀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1. 첫째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훈련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절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들을 훈련하시는 것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로써 자녀를 훈계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자녀들을 벌을 내리고, 회초리를 드는 것은 그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벌을 내리고 회초리를 들면서 기뻐할 아버지는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 아버지는 자녀가 바르고 온전하게 성장해 가도록...
징계하는 그 순간의 아픔을 참고 징계하는 것입니다.
진정 사랑하기에 자식이 잘 되라고 징계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5절에...
하나님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왜 징계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그의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징계는 사랑하기 때문이기에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7절 역시 똑 같은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다시 사랑하는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사단과 어둠의 권세 아래에 놓이는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믿음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 통로와 수단이 바로 징계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의 잘 됨을 위해서...
다시 택하신 자녀들이 온전히 생명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회초리를 드는 것입니다.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그렇습니다.
진짜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할 수 밖에 없습니다.
8절에는 심지어...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잘 못된 믿음의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랑받고 있는 자녀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 증거가 나의 신앙생활 속에 없다면...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사랑의 손길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버린 자식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음의 자녀들은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신앙생활 속에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 임했다면...
먼저는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있는 모습을 철저히 살피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함과 세상을 향한 모든 불의한 모습들을 돌이키며 다시 순종의 삶을 살려고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이 나에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입니까?
오늘 말씀 그대로 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징계의 손길로 인도하시는 은혜에 감사드리며...
더욱 넘치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체험하며 그 사랑 안에서 온전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오직 참 생명과 축복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며 그 사랑에 온전한 순종으로 화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5.06
본문: 히브리서 12:3-4절
제목: 경주자의 자세 4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믿음으로 )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경주를 하는 과정 가운데 피곤하며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처방 약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거역하고 대항하며 직접 십자가에 못 박았던 대적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으시고 참으셨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현실 그 자체, 어려움이 있는 그 상황 자체만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핍박하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자신을 욕하고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던 대적자들에게 대응하지 않고 참으셨습니다.
왜 입니까?
그것이 예수님 자신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였기 때문입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
십자가 없이 어찌 구원이 있습니까? 이 사실을 아셨고,
이 길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곧 우리에게 구원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에 피곤한 일, 낙심케 하는 일 등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이러한 것들 때문에 피곤해하며 멈추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끝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 구원의 놀라운 뜻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달려가야 할 신앙의 경주를 인내하며 끝까지 달려가야 하는 이유는
그 인내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그 경주의 끝에는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하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1절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불의한 재판관과 한 과부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에게 한 과부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자주 와서 괴롭게 하는데...
한동안 듣지 않다가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말합니다.
이 재판관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믿음을 품고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진실한 믿음으로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빠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기도하고 간청을 드려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어떤 각오로 우리의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4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피 흘리기까지 우리의 죄와 싸우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조건에 따라서 달라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 안에 있는 죄와 싸우는...
진정 예수님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리는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끝까지 간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모든 죽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나와 함께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어떤 목사님은 이미 두 아이가 있었음에도 한 아이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양 사실을 아이에게도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난 네 아빠고, 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은 네 거야."
하지만 아이는 집에 온 지 3년이 될 때까지 냉장고 문을 마음대로 열지 못했다고 합니다.
꼭 허락을 받고 냉장고 문을 여는 아이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목사님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해 주었지만 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아이가 처음으로 묻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목사님과 사모님은 아이를 안고 너무 감사해서 울었다고 합니다.
왜 이 아이는 냉장고 문을 열 수 없었습니까?
그때까지 아이에게는 그 목사님이 자기 아빠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문제가 너무 커서도, 우리 힘이 너무 나약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내 아빠로, 내 아버지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을 때...
믿음으로 살려는데 가슴 아픈 일이 생길 때...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내 아빠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무 멀리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 우리의 의로운 아버지가 되신다는 믿음, 이 믿음을 원하십니다.
바로 이 관계 때문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생 동안 달려가야 할 신앙의 경주는 긴 신앙의 여정입니다.
그 긴 신앙의 경주를 함에 있어서...
먼저는 경주를 방해하는 장애물, 방해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버려야 합니다.
거추장스럽게 몸에 매달고 달리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신앙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달릴 수 있습니다.
경주자의 눈은 목표 지점에 가 있어야 합니다.
결승점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것을 향해 뛰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며 목표가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시며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상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그 하늘의 상급과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예수님만을 좇아 그 하나님 나라를 향해 힘차게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끝가지 인내하며,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의 손길만을 믿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천국 백성이 되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고 말씀과 기도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을 듣고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5.05
본문: 히브리서 12:2절
제목: 경주자의 자세 3 (예수를 바라보자)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주자는 목적이 있습니다.
목표하는 곳은 결승점입니다.
그곳을 향해서 뛰어야 합니다.
바라보아야 할 곳이 분명하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경주자가 뒤로 돌아 뛰거나 관중석을 향해 뛴다면 그는 실격이 되거나 결승점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달리기 선수에게 바라보아야 할 곳은 결승점이지만 신앙의 경주에서 바라보아야 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신앙의 경주의 바른 방향과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첫째는 믿음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주가 되시는 분입니다.
믿음의 대상이시며 또한 믿음의 목표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 분 없이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없는 교회, 예수님 없는 크리스천, 예수님 없는 모임, 예수님 없는 가정, 예수님 없는 삶 우리에게 상상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신앙생활, 신앙의 경주의 대상이며 목표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둘째는 온전케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삶을 바르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우리 믿음의 완성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이 완전해질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우리 힘으로 우리의 심령이 온전히 거듭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히려 절망과 낙담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죽 했으면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의 모습에 너무 실망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백했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 믿음의 주가 되시며, 우리를 온전케 하실 분이 되십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몸소 몸으로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의 참으셨습니다.
그 부끄러움조차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우편에 오르사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는 분입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것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승리가 완전한 것임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전한 것임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또한 여러분!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달리기하는 선수들의 경쟁을 하며 달리는데, 결승 테이프를 끊고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너희도 이와 같이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 합니다.
신앙의 경주 역시 상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 백성 삼으시고 사명을 주셨음은 그 부름에 합당한 상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3:12-14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 잡힌바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로잡으신 이유가 있고 그것을 알기에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직 푯대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달려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승점을 향하여 달려간다는 뜻입니다.
그곳에는 하늘의 상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24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르심의 이유, 자신이 달려갈 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며...
이것을 끝까지 마치려 함에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목숨 걸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라보는 것은 오직 그 부르심에 합당한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모데 후서 4:7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하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를 바라보시겠습니까?
누구를 바라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일 진정한 신앙의 경주자라면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 진정한 생명과 축복의 길로, 좁은 길로 걸어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실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천국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이 신앙의 목표를 향하여 믿음으로 힘차게 한 걸음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신앙의 목표인 주님 달리신 십자가를 향하여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오직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오늘 하루도 깨어 기도하며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이 우리의 삶을 주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5.02
본문: 히브리서 12:1절
제목: 경주자의 자세 2 (인내로써...)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은 경주자의 인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할 때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출발하여 목표지점에 이를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달려야 합니다.
그 과정에는 호흡이 빨라지고,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빠지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게 인내하며 달려가야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경주를 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며 장애물이 될 만한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하며 동시에 인내로서 경주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안 됩니다.
중도에 절망과 낙심하는 마음이 들 때에도 멈추면 안 됩니다.
그 어떤 어둠의 시험과 세상의 유혹이 찾아와도 멈추면 안 됩니다.
내 삶 속에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찾아와도 절대로 멈추면 안 됩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주님가신 참 생명과 축복의 길로, 진리의 좁은 길로 걸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고등학교밖에 다닌 학력이 없음에도 아니 실제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학력을 가지고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 형제인데,
이 두 형제는 꿈을 갖고 끊임없이 달려 나갔고 또 달려 나갔던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당시 동력 비행기 비행은 유명한 과학자들은 물론,
미국 육군에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서 그것을 개발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그런데 그 연구에 있어서 대부분 실패했기 때문에 유명한 과학자들도 사람을 태운 비행기가 하늘을 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라고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난 라이트 형제는 달랐습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주일날은 예배드리는 날이니까 그날은 비행 성공률이 높아도 절대 비행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참 좋은 날씨를 만나서 비행기를 띄우는 것이 중요한데 주일날만은 그들이 예배드리는 일에만 그의 시간을 바쳤습니다.
또한 평생 술과 담배는 물론 당시에 흔하던 도박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같은 시에서 살았던 새뮤얼 랭글리 박사는 동력 비행에 있어서 최고로 꼽히는 과학자였는데...
미 육군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돈을 받아서 비행기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학벌도 시원치 않는 라이트 형제는 가족 외에 누구도 관심을 가져다 주지 않았고...
단 한 푼도 정부나 다른 어떤 기관에서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늘 마음에 불태우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또 도전했습니다.
손재주가 비상해서 자전거를 수리하고 제작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비행기를 만들어서 비행기 제작에 힘썼고 밤에는 수학, 물리학, 항공학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본격적인 비행기 실험을 한 3년 동안에는 허허벌판 언덕에서 텐트를 치고 거기서 살면서 비행기를 만들어서 띄우고 또 띄우고 또 띄웠습니다.
하루에도 20번 넘게 석 달 넘게 1천 번 넘는 글라이더를 띄워서 또 그것이 부숴지고 또 부숴지고 또 부서졌습니다.
반면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랭글리 박사는 1903년 12월 8일 수많은 인파를 모와 놓고 비행기 실험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뉴욕 타임즈는 이렇게 비웃었습니다.
“사람이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앞으로 천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지 않아서 라이트 형제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킬데블 힐스에서 ''플라이어''라는 이름을 가진 유인 동력 비행기를 띄웠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을 초청했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인명구조대 4명만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 하나가 따라 나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비행기가 뜬 것입니다.
4번 다 성공 했습니다.
그들이 실패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은 꿈을 이루었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나중에 비행기를 만드는 큰 회사를 설립하고 나서 부귀와 명성을 얻었지만 끝까지 겸손한 모습으로 조용히 그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비행의 역사가 현재 우주 비행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입니다.
그 시작은 포기할 줄 몰랐던 한 형제의 믿음과 꿈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신앙의 경주도 방해물들이 많고 또 우리 자신이 연약해서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로써 결승점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합니다.
절대로 멈추면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다 마치고 나면 그 결승점의 영광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영광! 구원의 기쁨과 감격! 하늘의 상급!
이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지금 현재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 있는 모든 고난과 역경과 절망들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늘의 소망을 끝까지 바라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영광과 참 구원을 위해 오늘도 힘차게 주님과 함께 전진해 나갈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온 모든 고난과 역경들을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인내하며 믿음으로 소망하며 믿음으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5.01
본문: 히브리서 12:1절
제목: 경주자의 자세 1 (죄를 벗어 버리고...)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달리기 선수에게는 그에 맞는 복장이 있습니다.
운동선수에게는 그 운동 수에 맞는 복장이 있습니다.
달리기 선수는 유니폼과 신발 외에는 다른 것은 일체 없습니다.
심지어는 신발과 유니폼조차도 최소한으로 가벼운 것을 신고 입습니다.
달리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모든 것은 제거해 버립니다.
오직 달리기 그 자체에만 집중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경주 가운데 방해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를 함에 거추장스럽게 방해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1. 먼저 무거운 것 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혤라어 '옹콘'은 운동 선수가 운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체중을 나타내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달리기 하는 선수가 몸에 이것 저것 붙이고 있거나 장식하고 있으면 이것은 달리기에 방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장애가 되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물질, 부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보면 “자족하는 마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넘어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함정)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빠지고 결국 침륜과 멸망에 빠진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을 망치는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을 더 많이 얻으려다가 진실한 믿음에서 떠나고...
오히려 더 큰 근심과 고통만 당하게 됩니다.
만족을 하지 못하고 좀 더 좀 더 부해지기 위해서 애쓰다 보면 그것 때문에 결국 시험과 함정에 빠지고 결국 믿음을 떠나고 더 큰 근심과 고통 가운데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해지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돈을 사랑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삶의 모든 목적과 관심이 오직 물질에 맞추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장애물은 “세상적인 관심사나 자만에 빠져있는 것 혹은 세상에 애착하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더 사랑하는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은 신앙의 경주에게 방해되는 것이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 “유페리스타토스”는...
경주자 주변에서 함정에 빠리는 것, 훼방하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을 자꾸만 얽매이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항상 바른 길로 가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항상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우리의 죄입니다.
사단 마귀는 항상 우리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죄를 건드립니다.
우리의 교만과 욕심과 미움과 시기, 질투를 건드립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얽매이게 만듭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꼬이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흔들고 쓰러트리기 위해서...
죄의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립니다.
여러분! 결국 오늘 죄의 특성 두 가지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이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죄는 무겁고 얽매이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죄는 항상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끌어내립니다.
죄는 그 무게가 무겁기 때문입니다.
음부로 지옥으로 자꾸만 우리를 끌어 내리려고 합니다.
또한, 죄는 얽매이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사랑으로 온전해 지지 못하도록 방해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습니다.
자꾸만 죄의 사슬로 우리를 얽매이고 계속해서 죄의 사슬로 묶어 둡니다.
우리의 가족과 이웃과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의 관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룬 사랑의 띠를 끊어 놓으려 합니다.
서로 서로 죄로 인하여 분쟁하고 다투게 만듭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신앙의 경주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가장 선행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무겁고, 얽매이게 만드는 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부디 오늘도 이 무겁고 얽매이게 만드는 죄를 오직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허물고 풀어 버릴 수 있는 귀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말씀의 능력으로 찔러 쪼개고...
주님의 보혈로 씻고...
성령의 불로 태워버려서...
오늘도 여러분의 영혼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더욱 한 걸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천국 문을 향하여 경주자의 자세를 품고 오직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고 시험하는 모든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과 기도 안에서 우리를 쓰러뜨리려는 죄의 올무들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30
본문: 히브리서 11:39-40절
제목: 믿음으로 약속을 받는 사람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시대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증거를 받았지만
약속은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약속”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이 약속은 장차 오실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뜻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증거는 받았지만...
결국 자신이 살아가는 그 시간 동안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어떤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40절 말씀처럼...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더 좋은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온전한 구원의 약속을 성취한 믿음의 자녀들은...
이제 이 세상을 살아갈 때어 어떤 믿음의 자세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좇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삶의 가장 좋은 것, 가장 중요한 것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마치 순교정신을 늘 마음속에 품고 오늘 하루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파키스탄에 기독교 장관 샤바즈 바티 장관을 아십니까?
아마도 대부분 모르실 것입니다.
십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약 백만 명 넘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도 박해받고 희생을 당했는데...
2011년 3월 2일 파키스탄의 40개 부처 장관 중 유일한 기독교인인 샤바즈 바티 장관이 자동 소총으로 무장 괴한들에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여러분!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입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박해가 임하는지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교회에 다녔던 이 바티 장관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붙들어 주셔서 그가 처음으로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으로 장관이 되었는데,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자동 소총으로 쏴서 그는 총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언제든지 자기가 죽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결혼도 하지 않고 자기가 홀몸으로 그 장관직을 수행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입니다.
순교하기 일 년 전에 한국에 와서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제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복음이 제 삶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제 삶으로 예수님을 세워나가길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복음은 실천을 통하여 나타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임을 증명할 때입니다. 훗날 주님을 위하여 제 생명을 희생할 수 있다면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 여길 것입니다.”
자기가 주님을 위해서 죽는다면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
진정 위대한 신앙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혹시 여러분 삶의 악세사리에 불과하십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입니까?
여러분이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필수 아이템입니까?
여러분! 부디 주님만이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구원이신 주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이 원하시는...
그 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통해...
오직 여러분의 삶 속에...
오늘 하루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 나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믿음으로 천국 복음을 우리의 삶으로 드러낼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능력의 손길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29
본문: 히브리서 11:36-38절
제목: 믿음으로 환난과 핍박을 이기는 사람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당했던 핍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36절에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착오에 채워졌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습니다.
구덩이 속의 진흙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 믿음으로 인해 수많은 핍박과 고난과 희롱을 당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예수님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복음 때문에 이런 모욕과 치욕과 조롱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2. 둘째로 37절에 “돌로 치는 것과”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로 치는 행위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지던 처형법 이었습니다.
이런 고통 당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탄식하셨습니다(마 23:37).
예수님께서 탄식하신 내용은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에 맞아 죽은 예언자 스가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입니다(대하 24:21;눅 11:51).
3. 셋째로 37절에 “톱으로 켜는 것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악한 왕 므낫세에 의해 이사야 선지자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4. 넷째로 37절에 “칼로 죽임을 당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로부터 피할 수 있었으나 그 외의 다른 예언자들은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왕상 19:10).
또한 여호야김이 집권할 당시 예언자 우리야가 칼에 죽임을 당했으며(렘 26:23),
신약 시대 사도 야고보도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행 12:2).
5. 다섯째로 37절에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라는 것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구약 시대 예언자들의 일반적인 복장이었던 (슥 13:4) 털옷을 입고 다녔으며(왕하 1:8) 신약 시대의 세례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었습니다(막 1:6).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라는 말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예언자의 삶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환란과 핍박과 고난 속에 있었던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38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핍박과 환난이 문제 될 수 없었으며 세상적인 부귀와 영화가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세상의 모든 유익과 편안함을 버리고 포기하고 믿음을 선택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택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38절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신앙인의 진정한 보상은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받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한 나의 것, 나의 상급, 나의 면류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많은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누려도...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오직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때문에 온갖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기철 목사님을 추억하는 기념집에 보면 당시 신사 참배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 일본의 국민의례라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흘렀고, 교단도 나서서 신사 참배를 부추겼습니다.
이 배교적 결정에 맞서 싸운 인물이 주기철 목사님 입니다.
일본은 목사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무려 다섯 차례나 체포해 고문을 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사님은 결국 생명 끈을 놓으려 했습니다.
네 번째 투옥되었을 때 주기철 목사님은 아내 앞으로 유서를 보냈습니다.
"몸이 부어올라 터질 지경이오. 여드레 후에는 아무래도 내가 세상을 떠날 것 같소. 어머니 봉양 잘하고 영진, 광조(두 자제) 잘 부탁하오."
유서를 받은 사모님은...
"아직까지 가정에 미련이 남아 이런 편지를 보냅니까? 어서 목사님 갈 길 가시라고 전해 주시오." 라고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그의 예감대로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핀 4월 21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했기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계시록 2:10 말씀대로
오직 하나님 나라와 천국 복음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라." 말씀의 본을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부디 여러분 모두도...
이와 같이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오늘도 믿음으로 여러분 삶속에 찾아오는 모든 환란과 핍박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오는 모든 죄와 어둠의 시험과 세상의 고난과 핍박들을 믿음으로 승리하며, 하늘의 소망과 하늘의 상급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 나라와 천국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모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순종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28
본문: 히브리서 11:32-35절
제목: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 2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말씀에 이어서 계속해서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6. 여섯째로 34절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제일 보잘것없는 가문 출신으로서 300명의 군사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삼손이나 하스기야 왕은 연약한 중에 있다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강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에스더 역시 연약한 여자였지만...
“죽으면 죽으리라” 믿음으로 강하게 되어 자기 동족을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습니다.
7. 일곱째로 34절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이 말씀은...
여호수아나 사사들 그리고 다윗의 전쟁사 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떠한 권세나 군대의 세력 혹은 모든 위험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 가운데 일어난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8. 여덟째로 35절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이 말씀은...
구약성경의 사르밧 과부와 수넴 여인의 경우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선지가 그녀의 죽은 아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나인성 과부,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
도르가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곧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곧 죽고 사는 문제였다는 사실입니다.
9. 아홉째로 35절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말씀은...
자신의 자녀나 관계된 자들을 부활로 되돌려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부활은 일시적인 것으로서 그들의 아들들은 다시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죽은 자의 부활”은 일시적으로 육신의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더 좋은 부활”은 영원한 생명을 부여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주님 재림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부활입니다.
즉,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하기 보다는 새로운 삶과 부활이 있다는 믿음의 확신에 근거해서 하나님과 그의 의를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바칠 수 있었습니다.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이슈타인에 버금가는 이 시대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팅 박사는 대학원 1학년 때에
“근육위수축성 경화증”이란 불치병에 걸려서 3년밖에 못살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지만 얼마 후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좋다. 시한부 삶이면 어떤가? 짧은 시간뿐이라면 더 값지게 활용해야지.
나에게 부여된 삶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계속 일을 하자.
어쩌면 생각보다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결국 그는 의사들의 진단과는 달리 3년이란 시한을 뛰어 넘어 지금까지 살아 있고,
또 세계 물리학계에 엄청난 업적을 남겨 약관 32세에 사상 최연소 영국왕립협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의 건강은 계속 악화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76세까지 살다 얼마 전 생을(2018년) 마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청년들을 위해 한마디 충고를 부탁했을 때,
그는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를 남겼다고 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주위 환경과 자신의 재주 없음을 탓합니다.
그래서 노력하기보다는 좌절하고, 낙담하며 쉽게 포기합니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결과부터 계산하고, 앞이 내다보이지 않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그의 미래가 얼마나 투명했겠습니까?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에 얼마나 그의 장래에 희망을 걸 수 있었겠습니까?
바벨론 포로기의 유대백성들이 어떻게 귀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결국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현재'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대한 꿈이 없어도 좋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될 비전이 없어도 좋습니다.
내 인생의 청사진을 단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한 걸음씩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으며 오늘 이 시간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바로 여기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육체가 멀쩡하면서도 헛된 절망감에 사로잡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오늘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 이웃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고 섬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여러분의 삶의 자리, 여기에서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곧 믿음의 승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거창한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오직 천국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순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선하신 능력의 손길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25
본문: 히브리서 11:32-35절
제목: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 1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은 오직 믿음으로 승리한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어떠한 믿음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승리를 거두었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1. 첫째로 33절에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이 말씀은 다윗이 블레셋과 모압과 수리아 그리고 에돔을 정복했던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블레셋 군대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를 뒤로 두고 홀로 골리앗을 맞서 싸웁니다.
그가 골리앗을 향해 외치는 말에 그의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삼상 17:45절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내게 가노라”
46절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47절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렇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골리앗을 물리쳤고, 믿음으로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2. 둘째로 33절 “의를 행하기도 하며...”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소유한 사사들이나 열 왕들의 의롭고 바른 통치를 가리킵니다.
사무엘과 같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과 그리고 다윗과 같은 왕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심을 알고 바르게 의롭게 통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리라”는 약속을 받았고 그 약속의 성취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3. 셋째로 33절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이 말씀은...
다니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려다가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아무런 해도 받지 않고 거기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윗도 양을 칠 때 사자를 물리쳤습니다.
죽음의 위기를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으로 승리로 바꿔버렸다는 말씀입니다.
4. 넷째로 34절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이 말씀은...
다니엘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세 명의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벧느고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단 1:7).
그들은 느브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아니한 죄목으로 풀무불 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조금도 상하지 않고 그곳으로부터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앞에서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굳건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이것 역시 믿음의 승리입니다.
5. 다섯째로 34절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이 말씀은...
선지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위협을 당했던 선지자들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시고 지키시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에게서 무사히 도망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이세벨의 아들인 여호람에게서 구원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다윗'도 사울 왕의 칼날을 무사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심을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부디 여러분 모두도...
이러한 믿음을 품고 이 세상을 담대히 승리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도 이와 똑같은 시험과 시련과 고난들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오늘 이 순간도...
이러한 세상과 어둠의 공격과 시험 중에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붙들고 의지하며 기도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도...
사자 굴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풀무 불에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온갖 세상의 위험과 칼날과 같은 위협 속에서 능력의 손길로 함께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말씀에 의지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능력의 손길로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 주시며, 함께하여 주실 것입니다.
결국은 세상과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이 세상과 어둠의 모든 시험들을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로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보호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돌보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24
본문: 히브리서 11:31절
제목: 라합의 믿음 3 (구원의 표를 붙드는 믿음!)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라합은 정탐꾼들을 숨겨준 댓가로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수 2:12-13절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내가 너희를 도왔으니 너희도 내 부모와 형제를 살려달라.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하나님께 맹세하고 진실한 표, 구원의 표를 달라...”
이 말에 정탐꾼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때 너희를 구원해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창에 “붉은 줄”을 달아 표시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면 라합과 그 부모와 형제들을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 약속대로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그 땅의 모든 백성을 진멸했지만,
라합의 집의 창문에 달린 붉은 줄을 보고 그 집을 진멸하지 않고 구원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창문에 달린 “붉은 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창문에 달린 붉은 줄로 인해 라합의 가정이 구원을 받았듯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피를 믿는 자마다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붉은 줄은 바로 진실한 표, 구원의 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라합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믿음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을 받아 들였습니다.
믿음으로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은 라합은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마다...
구원의 표가 되시는, 진실한 표가 되시는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라합은 비록 기생의 신분이었지만 믿음으로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천한 신분이었을지라도 믿음으로 정탐꾼을 숨겨줌으로...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라합은 구원의 족보, 예수의 족보에 오르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비록 작고 연약할지라도...
이름 없는 연약한 한 사람일지라도...
심지어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았던 죄인일지라도...
나를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한 페이지가 씌여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다른 또 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또 다른 한 가정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한 교회 공동체가 구원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심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믿음은 여러분 한 사람만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의 믿음을 사용하셔서...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의 영혼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한 영혼이 하나님께는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할 때에...
먼저 여러분 한 사람 각자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세워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전하고 증거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섬김의 향기를 통해서 증거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여러분의 믿음을 말씀의 반석위에 세워 가시면서...
우리의 온전한 구원의 표인 주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그 십자가 앞에 우리의 모든 교만과 세상 정욕을 못 박고...
오직 천국 복음을 증거하며...
겸손히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구원의 표인 주님 달리신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저 천국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세상과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한 성령의 열매로 드러나게 하시고 그 열매를 통해 오늘도 풍성한 복음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23
본문: 히브리서 11:31절
제목: 라합의 믿음 2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라합은 수 2:11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1절
“너희의 하나님은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이것은 하나님만이 온 천하를 다스리시는 유일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며 하늘과 땅의 유일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라합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듣고 그의 마음이 녹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구나!
저 분만이 참 하나님이시구나!
다른 것들을 다 거짓이구나!
가나안 땅에는 여러 족족들, 특히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각자 족속마다 믿는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참 신이 아니다!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구나!
이것을 깨달았고 믿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동족을 버리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절에 가서는 부처를 믿고,
산에 가서는 나무나 돌에 합장하고,
제사 지내는 곳에는 귀신에게 절하고,
어느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신에게 절하고...
이런 것은 진정한 신앙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 신앙입니다.
하나 외에는 없습니다.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신앙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타협하지 않습니다.
타협하지 않아서 때론 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핍박을 당하기도 합니다.
죽음의 위협과 박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이방인이었던 라합이...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고백하고 있는 진정한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구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한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외에 세상의 다른 신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보다 물질을 더 섬기고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보다 내 자녀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보다 이 세상 것을 더욱 사랑하며 이 세상이 주는 쾌락과 만족을 쫓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 모두...
오직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우리의 심령 위에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귀한 하늘의 영생의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그 어떤 것보다 더욱 귀한 하늘의 상급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만을 간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시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믿고 고백하며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심령을 축복하여 주셔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과 축복의 손길이 풍성히 임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22
본문: 히브리서 11:31절
제목: 라합의 믿음 1 (믿음은 들음에서!)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땅은 이미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들과 전쟁은 불가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이 땅을 점령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을 진멸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만난 첫 번째 성이 바로 여리고 성입니다.
여호수아는 먼저 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전에 두 사람의 정탐꾼들을 보내 여리고 성을 엿보도록 합니다.
두 사람의 정탐꾼들이 여리고 성에 몰래 들어가 라합이라고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물게 되는데, 마침 여리고 왕이 정탐꾼들이 몰래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라합에게 정탐꾼들이 네 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합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 정탐꾼 두 사람을 지붕 위 삼대 사이에 몰래 숨겼습니다.
그리고 군사들이 간 후 지붕에 올라가 정탐꾼들에게 자신이 왜 그들을 숨기고 도와주게 되었는지를 설명을 합니다.
이 내용을 통해 우리는 라합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장 9절 이하에 나와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라합의 믿음은 들음에서 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9절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라합은 정탐꾼들을 숨겨준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 물을 마르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게 하시고, 뒤쫓던 애굽 군사들을 홍해에 수장 시킨 일을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단 강 동편에서 아모리 족속들의 두 왕인 시혼과 옥이라는 왕에게 행한 일을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들으면서 라합은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신,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께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이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감동하시면 그 말씀이 믿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믿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믿어집니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열심히 들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도하는 마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듣는 과정 속에서 믿음이 싹트고 자라납니다.
성경의 사실들이 이해되어 지고, 받아들여지고, 믿어지게 됩니다.
성경 속에서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실제 나의 삶에, 나의 생활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고 체험하게 됩니다.
(입술로 소리 내어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을 읽으며 여러분의 귀로 직접 듣는 훈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정말 가장 강력한 기도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여러분이 마음으로 믿어지는 성경의 모든 역사들이...
실제로 여러분의 삶 속에도 성령의 역사로 똑같이 드러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Holy Life
25-4.21
본문: 히브리서 11:30절
제목: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리고에 대한 정탐을 마친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위해 나갑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은 견고하게 굳게 닫혀 있었고 출입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수 6:2-5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그랬더니 여리고 성은 무너졌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승리의 비결, 믿음으로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알게 하셨고,
무엇을 바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승리입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가진 믿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 입니다.
여러분!
전쟁에 앞서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군사를 점검해야 합니다.
무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전쟁을 경험할 수 없지만, 스포츠를 보면 압니다.
스포츠의 최종 목적은 승리입니다.
경기에 앞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선수를 살핍니다.
선수들의 구성, 컨디션이 어떤지 살핍니다.
그리고 장비를 점검합니다.
야구라면 방망이와 글러브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방망이를 휘두르고 공을 치면서 훈련을 합니다.
글러브를 끼고 수비 훈련도 합니다.
그리고 작전을 세웁니다.
상대편의 전력을 탐색을 하고 어떤 작전을 펼칠 것인지 점검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실제 경기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군사력에 대해서도, 무기에 대해서도 작전에 대해서도 아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작전이라면 매일 성을 한 바퀴씩 도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의 작전이 아닙니다.
어떻게 성을 기어오르고, 성을 무너뜨릴 것인가에 대한 작전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승리가 여호수아에게도, 백성들에게도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알고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순종하고 따를 뿐입니다.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를 뿐입니다.
결국 승리의 비결, 믿음의 승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갖는 것 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기에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실패를 합니까? 왜 무너집니까? 왜 넘어집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합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면 환경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만 있다면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설사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기 예화 하나가 있습니다.
1955년 겨울에 충남 부여 농촌마을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둘째 딸로 태어났는데 이 딸의 어릴 때부터 소원은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낙도, 사람들이 가지 않는 섬에 가서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이 워낙 가난해서 농촌 일을 해야 하는 바람에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마음에 학교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도저히 시골농촌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음을 알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 전자부품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면서 낮에는 열심히 검정고시 시험을 보고 8개월 만에 고등학교 검정고시 과정을 다 마치고 그리고 드디어 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과를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신랑을 만나서 결혼하기로 하고 한 달을 앞뒀는데 그만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한 달 동안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다가 깨어나 보니까 목 위에는 정신이 들고 말을 할 수 있고 움직일 수가 있는데 목 아래는 마비가 되었습니다.
손 하나 까딱할 수가 없습니다.
절체 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절대 절망에 부딪힌 이분이...
절대 절망 가운데 절대 희망 되신 우리 주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절대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꿈을 가지고 구족화가의 꿈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한미순 성도의 이야기입니다.
“혼자 있어도 홀로가 아닌”이라는 귀한 책을 썼는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입에 붓을 물고 화선지에 선을 긋는 순간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치아가 뻐근하고 입에선 침이 흘러나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입안이 다 헐어 하루에도 수십 번 붓을 뱉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시 붓을 물었습니다.”
결국 ‘세계구족화가협회’에 등록되고 장학금과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원을 받았습니다.
입으로 그림을 그리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어요.
그런 절망 가운데 이렇게 감사를 드립니다.
“뜻밖에 찾아온 고난으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절망하며 수 없이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언제나 함께 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닙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절대절망의 상황에서 원망과 불평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절대 감사로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혼자 있어도 홀로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오직 그 분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 믿음의 승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축복의 손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18
본문: 히브리서 11:29절
제목: 고난을 극복하는 믿음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애굽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을 보내고자 했던 애굽 왕 바로는 다시 마음을 바꿉니다.
그리고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기 위해 뒤쫓아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이 합니다.
앞에서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옵니다.
바로 왕의 군대가 가까이 오자, 백성들은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모세에게 말 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
원망을 합니다.
“차라리 애굽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
모세가 그런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 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말씀대로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향해 내밀었더니 하나님께서 큰 동풍을 밤새 불도록 하셔서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고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다 가운데 육지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가 손을 들어 바다 위로 내밀며 바닷물이 애굽 군대 위에 다시 흐리게 하라 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다 건너자, 뒤따라오던 애굽 군대는 양 옆에 쌓여있던 물이 다시 덮치며 물에 잠겨서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다를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바닷길을 건너 무사히 애굽 군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군대는 설마... 바닷물이 갈라질 것인가?
또 갈라진 물이 다시 합쳐질까 시험하며 뒤따르다 모두 침수되어 바닷물에 장사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가만히 있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구원을 보았을 뿐입니다.
앞은 홍해가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라오는 이 절대 절명의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만히 있어 내가 행하는 구원을 보라” 말씀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진 크리소스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후 2세기경 요한 크리소스톰이 황제 앞에 붙들려 나와 그의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세례요한처럼 황후의 부정을 지적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여 황제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었습니다.
황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내가 너를 추방시킬 것이다.”
그러자 요한 크리소스톰은 태연히 미소를 띠우며 말했습니다.
“폐하께서는 결단코 나를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결단코 나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노하여 호통 치며 다시 말했습니다.
“그래 좋다. 그러면 너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여 버리겠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그것도 쉽게 안 될 것입니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쌓아 두었기 때문에 폐하께선 그것에 손도 대지 못할 것입니다.”
황제는 노발대발하여 소리쳤습니다.
“내가 네 놈을 죽여 버리겠다.”
그러자 크리소스톰은 더욱 태연한 자세로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것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난 40년 동안 이미 죽어 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황제가 이제 체념하는 듯 말했습니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저 놈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 무엇도 예수의 생명에서 그를 빼앗을 것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진정 믿음을 품고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고난과 심지어 죽음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 고난을 믿음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성 금요일...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천국의 소망과 구원의 확신을 품고 오직 믿음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 찾아오는 모든 고난과 핍박을 극복하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십자가의 능력을 힘입어서 오직 천국의 소망과 구원의 확신을 품고 이 죄악과 어둠의 세상을 담대히 승리하는 하루를 살기 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우리의 심령과 삶 속에 충만히 임하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17
본문: 히브리서 11:28절
제목: 죽음을 극복하는 믿음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이끌고 애굽을 떠나려 하자 애굽 바로 왕은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재앙을 내려 바로 왕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십니다.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의 재앙입니다.
그럼에도 바로 왕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지막 열 번째 재앙, 장자의 죽음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애굽에 있는 처음 난 것은 사람에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다 죽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온 애굽에 전무후무한 곡성이 있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사람도, 짐승도 그 어떤 것도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어린양, 흠없고 일년된 수컷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로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애굽 땅에 있을 재앙이 넘어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곧 유월절 입니다.
유월절의 뜻은 “pass over”입니다.
문설주와 문지방에 바른 피가 표적이 되어 내가 그 피를 볼 때 죽음이, 재앙이 넘어갑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하나님의 명령에 모세와 백성들을 순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28절에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믿음으로 유월절 절기를 정하고 영원한 규례로 정한 것입니다.
피를 뿌림으로 피를 바름으로 장자가 죽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피를 믿는 자마다 영원히 죽을 죄의 죽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계시대로,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기억하며 부활의 신앙으로 살 것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며, 죽으셨다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하시지 않고 이미 죽은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 하심으로 자신이 죽음을 이기신 분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스스로 죽으신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부활 신앙은 우리 신앙이 죄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승리하는 신앙이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부활주일에 한 사람이 친구의 손에 끌리다시피 해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따라왔지만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신앙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분은 원래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지 겨우 일 년 반에 사고로 남편을 잃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남편을 사랑했던 이 분은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셨다면 남편을 이렇게 데려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너무나 안타깝게 여긴 친구가 자기 교회에 이 친구를 설득하고 설득해서 겨우 부활절 날 데리고 오게 됩니다.
자신도 원래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 밝아 보였습니다.
자신은 슬픔과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밝고 기뻐 보였기에...
교회는 나왔지만 너무나 어색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찬양이 드려질 때 옆에 함께 앉은 친구가 손을 꼭 잡아줍니다.
찬양이 시작되자 마음은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봉독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그 순간 이상한 기류 같은 것이 이 분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그 넓은 교회 안에 나 밖에 없는 듯 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두려움에 두 팔을 허공에 휘저었습니다.
그 때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니요, 아니요, 난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남편을 당신이 데려가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니요, 남편은 이미 죽어버렸고 내 삶은 절망입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니요.”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겨우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습니다.
“왜... 왜 저를 사랑하시나요. 왜 아무것도 아닌 저를 위해 죽으신거죠 왜요?”
그 때 한 빛이 다가와 이 분을 감쌉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눈 앞이 환해졌습니다.
그제야 안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의 의미를!!!
그 이후로 내 눈과 코에서 흘러내린 물들로 얼굴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내 가슴 속으로부터 솟아나는 큰 울림으로 인해 몸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가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축하해. 너에게 성령이 임하셨구나."
그러자 갑자기 나는 이젠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를 짓누르던 짐이 사라져버렸어. 짐이 사라져 버렸다구! 이제 난 괜찮아. 난 이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이 분은 예배 가운데 임하신 성령님을 통해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도,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며 천국에서 남편을 다시 만날 그날을 바라보며...
아니 이미 저 천국에서 기쁨의 날을 보낼 남편을 바라보며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죽음은 두려움이지만...
부활 신앙은 이 죽음을 이기고 오히려 감사하며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이제 부활절을 맞이하는 고난 주간의 마지막 목요일을 보내시면서...
부활 신앙으로 새롭게 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모든 사망과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오직 하늘의 기쁨과 참 소망 가운데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주님! 오늘 고난 주간을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 주님과 함께 성 금요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에 우리의 교만과 욕심과 세상의 모든 정욕을 못 박고 십자가에서 부활의 영광으로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16
본문: 히브리서 11:27절
제목: 믿음으로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켜 하나님께서 명하신 땅, 가나안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애굽 바로 왕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온갖 이유를 대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당시 애굽 왕 바로는 절대 권력자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신으로 여겼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바로 왕과 당당히 맞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바로 왕의 계속되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모세가 바로 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보이는 것처럼 믿음으로 바라보고 두려움을 이겨냈다는 사실입니다.
두려움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였던 짐 길버트는 그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따라 치과병원에 가서 어머니가 치료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받던 그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길버트의 마음은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가 자라서 유명한 테니스선수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치과병원에 대한 공포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치과병원에는 가지 않고 자신의 주치의를 집에 모셔서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 치료기가 닿는 순간, 그도 역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과거 두려움의 생각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는 말씀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중에 40%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며, 50%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것이며, 10%만이 현재를 위한 것이다"
워싱톤에 가면 링컨이 애용하던 성경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성경 속에 손 때에 이겨져 눌린 손가락 자국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 번 같은 장소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생긴 자국입니다.
그곳은 시편 34편 4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시리로다”
시편을 눌린 자국까지 나도록 되풀이 읽은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링컨이 남북전쟁과 그의 평생에 걸친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확신과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그 시체를 무덤에 두었습니다.
안식 후 첫 날 곧 주일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왔다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동굴 무덤의 문을 막아 놓았던 돌이 옮겨져 있었고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다른 제자들 역시...
안식 후 첫날 주일 저녁에 두려워 모인 곳에 문들을 닫고 모여 있었습니다.
마리아도, 제자들도 모두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며 위로하여 주셨고...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 평강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은혜는 바로 “평강”입니다.
부활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이 세상이 주는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평강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는 많은 두려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시작에 대한 두려움, 성공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우리가 부활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 분께 모든 두려움을 맡기는 것 말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즐거움과 기쁨으로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꽃가게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단골 손님이 할머니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언제나 즐거워하시는 것을 보니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 봐요.”
“천만에요.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내게도 고통스러운 일, 짜증나는 걱정거리가 생긴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매일 즐겁게 사실 수가 있어요? “
나는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산답니다.
3일의 비밀이라니요? 그게 무엇입니까?
“3일의 비밀이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그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맡겨버리고 조용히 3일을 기다리는 것이라오. 예수님이 무덤에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그 문제가 해결되는 데는 3일이면 족하다오. 때론 숫자대로 3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이 와도 3일 후면 언제나 광명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사는 게 늘 즐겁기만 하지요.”
부디 여러분 모두도...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과 삶 속에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을 버리고...
우리들에게 하늘의 참 평강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늘의 참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 삶 가운데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이 온전히 드러나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15
본문: 히브리서 11:23-26절
제목: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모세의 믿음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상 주심을 바라보았습니다.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 받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 받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란 뜻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친히 내가 어려움을 무릎 쓰는 것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 섬기는 것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자신이 모아두었던 향유 옥합을 깨어서 예수님께 부었을 때,
그토록 아까운 향유를 왜 허비, 소비하느냐?
책망하고 분노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이 비싼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왜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 이 여자가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여인이 한 일은 비싼 향유를 허비하는 일처럼 여겨졌지만,
그 일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한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낭비하는 것 처럼 보이고...
어리석게 보이는 일이 예수님께는 가장 아름다운 헌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여인의 한 일이 복음이 전파되는 어느 곳이든지 전파될 것이라며 여인을 칭찬했고, 축복했습니다.
한 청년이 어느 회사에서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 회사의 사장도 이 사람을 유심히 보고 그 성실함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말합니다.
“내일은 휴일이지만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나와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성실하게 일하던 청년이 나서면서 말합니다.
“사장님! 저도 일하는 것 싫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순간 이 사장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래? 그렇다면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겠군...”
이 청년이 졸지에 해고를 당했고,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을 해고했던 사장에게 전화 한 통이 옵니다.
친한 친구에게서 온 전화 입니다.
“정말 중요한 일을 믿고 맡길만한 믿을만한 젊은 친구를 찾고 있는데, 소개해 줄 수 있겠나?” 그 때 그 사장의 머리에 얼마 전 해고했던 그 청년이 떠오른 것입니다.
비록 주일날 일하지 않겠다 해서 해고를 했지만, 성실하고 믿을만한 친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해고했던 이 청년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청년을 친구에게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처지나 환경에 따라 믿음과 신념을 바꾸는 사람이 아닐세. 자네가 믿고 맡길 만한 청년일세.”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청년은 이전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게 되었고, 성실함으로 큰 성공을 이루는 인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사람들 보기에는...
믿음을 지키는 일이 손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마치 다니엘의 믿음과도 같습니다.
왕이 내려준 음식을 거부하는 일이 일시적으로는 손해이고 두려움일지 모르지만...
결국, 하나님께 더 높이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을 함께했던 이유는...
“상 주심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일에 동참하고,
믿음으로 고난의 일에 동참하고,
믿음으로 손해 보는 일에도 동참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도...
믿음으로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믿음은 바로 공주의 아들로 얻게 되는 부귀영화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것을 잠시 잠깐 누릴 죄악의 기쁨보다 더욱 좋아했습니다.
이 선택은 곧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실 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 위에서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세상의 죄악의 기쁨을 거부하며 그렇게 사는 것은 우리의 믿음으로 보시고 반드시 우리에게 상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부디 오늘도 고난 주간의 하루를 보내면서...
여러분의 삶 속에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귀한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께서 상 주심을 바라보며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사랑과 섬김과 희생으로 우리의 모든 이웃들을 섬길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14
본문: 히브리서 11:23-26절
제목: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바로의 공주에 의해 궁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공주의 아들, 곧 왕자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 궁중에서 무려 40년을 자라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당시에 세계의 중심이었던 애굽이란 나라, 그것도 궁중에서 자랐고, 애굽의 정치, 문화등 애굽의 모든 것을 경험하며 자란 모세입니다.
어렸을 때의 경험, 지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가운데서도 모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유모로 들어간 자신의 친어머니가 끊임없이 “히브리인의 정체성” “이스라엘 자손의 정체성”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유모인 어머니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기르면서...
“자신들의 조상 가운데 역사하셨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에 대해 끊임없이 가르침으로 비록 애굽의 왕궁에서 자랐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루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하는 곳을 가게 됩니다.
자신의 동족들이 극심한 노동과 학대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모세는 한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 곧 자신의 동족을 매로 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피가 끓게 되는 모세, 분노하게 된 모세가 사람이 없을 때 몰래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게 됩니다.
다음날 다시 나가보니 그날은 히브리 사람들이, 동족끼리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모세가 잘못된 사람에게 어찌하여 같은 동포를 치느냐 했더니, 뜻밖의 반응을 합니다.
“네가 우리 통치자이며 법관이냐” 합니다. “웬 참견이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고 하느냐” 말 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가 날까 두려워하게 됩니다.
마침 이 일을 들은 바로 왕의 체포령이 떨어집니다.
아마도 바로 왕은 누가 그랬는지 모르고 체포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던 모세는 결국 애굽에서 멀리 떨어진 미디안 광야로 도망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려 다시 40년을 살게 됩니다.
모세의 인생은 애굽에서 40년, 그리고 도망쳐서 미디안에서 40년, 그리고 하나님께 부름받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임받는 40년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애굽 궁중에서 40년을 지낸 모세가 이곳을 떠나는 과정을 통해 모세의 믿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은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부귀와 영화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는 바로왕의 공주의 양자입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음에도 이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길을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7:22절에 보면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굽인으로 부족함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지식에 있어서, 말에 있어서 행동에 있어서 제한 받을 것이 없었습니다.
역사 기록에 보면 애굽과 이디오피아와 전쟁이 있게 되는데,
이때 애굽의 총사령관으로 모세가 출전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게 되고 많은 공을 세우게 됩니다.
바로 왕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모세는 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버립니다.
자신의 정체성 때문입니다.
자신은 애굽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이 정체성이 바로 자신의 유모로 있던 그 어머니에 의해서 생겼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이렇게 결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상황적으로 떠밀려서 한 것이라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결정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세상의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영광을 버립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원했습니다.
25절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의 핍박과 학대로 고통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고난, 그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고통하는 자신의 동족을 도우려다 오히려 사람을 죽이게 되고 발각되어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여러분!
이 땅위에서 우리가 왜 믿음으로 살려고 애씁니까?
잠시 잠깐 누릴 죄악의 기쁨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반대로 함께 고난의 길, 어려움의 길을 가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땅의 것은 마치 메아리와 아지랑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어느 무덤 앞에 서 있는 비석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메아리와 아지랑이를 알고 가노라"
아마도 이 분은 이 세상에서 온갖 부귀 영화를 누렸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메아리와 아지랑이와 같다는 것을 죽음 앞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덤에 새기도록 하고 후손들에게 알렸을 것입니다.
메아리와 아지랑이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금방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이 모두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믿음의 길을 가고,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이 세상의 영광과 부귀와 기쁨을 위해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늘의 영광과 참 생명과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 것을 담대히 버릴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이 세상에서 높임 받는 우리의 모든 칭호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천국 백성으로서 거룩한 성도의 호칭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 성령의 열매로 인하여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11
본문: 히브리서 11:23-26절
제목: 믿음의 부모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제 말씀에 이어서 계속해서...
모세의 부모의 믿음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담대” 했습니다.
바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담대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를 숨기는 일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만약 아이의 울음 소리가 새 나가고 애굽인들에게 알려지면 아이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죽음의 위협 가운데 노출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님을 바라며 믿음으로 아이를 숨겼습니다.
다른 모든 부모들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넘겨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과 풍랑으로 배에 물이 들어옴을 보고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고물을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급하게 깨우는 제자들을 향해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서도 이런 바람과 파도가 올 수 있습니다.
아니 항상 우리 인생 가운데는 고난과 시련이라는 바람과 파도가 닦쳐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심을 믿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모세의 부모는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더 이상 숨길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들은 갈대상자를 만들고 나일강 하숫가 갈대 사이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리고 딸을 시켜 그 아이가 어떻게 되는 지 지켜보게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것을 바라보고,
또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소경 바디매오 입니다.
예수님의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쳐 외칩니다.
“다윗의 아들 예수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치고 소리칩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책망을 주어도 전혀 게의치 않고 외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이것이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말씀처럼...
여러분 모두도 끝까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일에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갈대 상자에 아이를 넣고 나일강에 던지는 순간, 그 부모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아이를 맡기는 것 외에는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공주의 시녀들에게 아이가 발견되게 하셨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아무리 바로의 공주가 발견하게 되어도, 아이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공주가 자신의 아버지의 명을 알고, 히브리 아이를 갈대 상자에서 꺼내 강에 던지라 했으면 모세는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공주의 마음을 주장하셨습니다.
갈대상자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자신이 데리고 가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순간 이를 지켜보던 아이의 누이가 달려가서 공주에게 유모를 소개했습니다.
그렇게 모세는 궁중에 들어가 왕자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유모가 되어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라도록 기도하며 키웠습니다.
이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모두도...
이렇게 놀랍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모세의 부모의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도 믿음으로 아이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아이에게 있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쓰실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위험을 무릎 쓰고 담대하게 아이를 감추었습니다.
더 나아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 믿음으로 모세는 극적으로 살아나 바로 왕 공주의 아들로 궁중에서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민족의 지도자로 쓰임 받을 준비를 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하여...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기도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들을 능력과 축복의 손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오늘도 담대하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자녀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맡기는 귀한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시간과 환경 속에서 늘 함께하여 주시고 능력의 손길로 역사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숨결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10
본문: 히브리서 11:23-26절
제목: 믿음으로 보고!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야곱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야곱이 노년에 그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오게 됩니다.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의 청을 따라 70명의 가족이 애굽에 내려와 정착하게 됩니다.
그 후 약 400년의 역사가 흐르면서 야곱의 후손들은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애굽 사람들에게는 큰 위협이 됩니다.
그 당시 인구수는 모든 상업과 농업 그리고 군사에 있어서 두려움의 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굽 왕은 만약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반역을 하고 오히려 적들과 힘을 합쳐 자신들을 치고 애굽 땅에서 나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감시하기 위해 감독을 세우고 비돔과 라암셋이라는 성을 건축하게 하고 극심한 학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에게 명하여서 남자아이를 낳거든 죽이고, 여자 아이를 낳거든 살려두라 합니다.
그런데 이들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차마 이렇게 하지 못하고 남자아이들을 살려둡니다. 왕이 불러서 묻자, 히브리 여인들을 강해서 산파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해산해 버린다고 변명을 합니다.
그러자, 바로 왕이 부하들을 시켜 남자아이를 낳거든 나일강에 던지고, 여자아이는 살려두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모세가 태어납니다.
모세의 부모는 레위 족속이었는데, 잉태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남자아이 입니다.
그런데, 남자 아이가 태어났음이 알려지면 나일강에 버려져 죽임을 당할 것을 아는 그 부모는 이 아이를 석달동안 숨겼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갈대로 상자를 만들고 그 속을 역청과 나무 진을 발라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아이를 담아서 나일강 물가 갈대 사이에 두고 아이의 누이를 시켜 아이가 어떻게 되는 지 보게 합니다.
마침, 바로왕의 딸, 공주가 목욕하기 위해 왔다가 상자를 발견하고...
모세를 양자로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세는 바로의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 곧 왕자로 자라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을 살펴보면...
진정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인도하신 놀라운 섭리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3절에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 부모가 이 아이의 아름다움을 보고 믿음으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고 석달 동안 숨겼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모세의 부모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이의 아름다움 보았다”
무슨 뜻 입니까?
자신의 아들을 단지 육신적인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생각했고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 아이가 얼마나 아름다운 아이인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 아이가 장차 하나님의 일에 위대하게 쓰임 받을 것을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는 눈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을 볼 때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볼 때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움직일 수도 없는 커다란 돌맹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귀찮아 했습니다.
그러나 로댕이란 사람은 그 바위를 보고 “인생을 고민하는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돌맹이를 조각하여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난로 위에 주전자에서 물이 끓어 수증기가 생기며 소리는 내는 것을 당연하듯이 무심코 모든 사람이 지나쳤지만...
와트라는 사람은 “증기 기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증기기관으로 말미암아 최초로 증기 기관차가 달리게 되었습니다.
번개가 치는 모습과 소리에 사람들은 놀라며 몸서리 쳤지만, 플랭클린은 전기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쥐를 징그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직장을 잃고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지내다 쥐들이 쥐구멍을 들락거니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미키 아우스”을 만들어 냈습니다.
성경도 똑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자신들을 메뚜기로 보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밥으로 여겼습니다.
결국 열 명과 이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죽게 만들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아이의 아름다움”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도...
믿음으로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죽어야 하는 모세의 인생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멋진 금 그릇과 같은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 또한 믿음으로 바라보면...
여러분의 자녀 멋진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부디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멋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환경과 여건 속에서 오직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우리의 가족, 자녀, 친구, 성도들을 믿음으로 기도하며 그들을 축복할 수 있는 귀한 아침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