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Life

25-08.08

본문: 야고보서 3:7-8절

 

제목: 길들일 수 없는 것!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야고보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말'에 대하여 조금 더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7-8절 말씀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은...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동물들은 사람이 길들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다스릴 수 있습니다.

유순한 강아지부터 육식동물은 사자나 호랑이도 사람이 길들일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말을 잘 듣습니다.

씨월드에 있는 훈련 받은 범고래를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트레이너와 함께 한 몸이 된 듯이 여러 가지 수신호에 맞추어 정말 멋 진 퍼포먼스를 보여 줍니다.

물론, 몇 년 전에 큰 사고가 있었지만...

범고래와 트레이너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지어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서 모든 자연만물과 동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다스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의 혀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혀는 사람의 힘으로 다스릴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혀는 왜 다스릴 수 없게 되었습니까?

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말의 권세를 악하게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지으신 모든 자연만물을 다스려야 할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형상으로 지으신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서...

축복의 말... 사랑의 말이 아니라...

원망과 저주의 말만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안에 마음속에 심령 속에 죄가 가득하기에...

악한 것이 가득하기에...

입만 벌리면 마음속에 품었던 악한 것을 말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마 12:34-35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여러분!

그러면 이 길들일 수 없는 혀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 충만 입니다.

말씀의 능력으로(성령의 검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교만과 욕심과 시기와 질투를 하나씩 회개하며 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하나님의 성품이신 성령을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위에 임하면 임할수록...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심령위에 넘치면 넘칠수록...

우리의 입으로 나오는 말이 변하기 시작하고 바뀌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바뀝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믿기 전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입으로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란 존재자체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입으로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욕하고 저주하는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진정한 믿음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변합니까?

하나님을 부인했던 입술로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송합니다.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고 원망했던 입술로 기도합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했던 입술로 이제는 나의 이웃을 향해 사랑의 말... 위로의 말...

믿음을 전해주는 말을 합니다.

이제는 성령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속사람이 변할 때에...

우리의 심령이 거듭날 때에...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말, 축복의 말, 위로의 말, 사랑의 말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왜 입니까?

우리 심령이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히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오직 말씀 안에 거하며...

성령님 주장하여 주시는 역사를 체험하며...

여러분의 입술과 혀를 절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천국 복음만을 증거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의 입술과 혀를 주장하여 주셔서 우리의 입술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성령님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입술의 선포를 통해 오직 하나님 나라를 증거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8.07

본문: 야고보서 3:3-6절

 

제목: 말 조심!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은 말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

세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먼저, 재갈에 비유합니다.

3절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여러분!

말(동물)이 아무리 크고 힘이 세다 할지라도 입에 재갈을 물려놓고 잡아끌면 그 온 몸이 따라옵니다.

이와 같이 내 입을 재갈 먹여서 말만 바로 하면 내 온 인격이 거룩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몸이 영혼이 더러워지는 것은 모두가 이 말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이 곧 나의 인격이요 전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할 때에 우리의 입을 제어할 수 있는 재갈을 물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재갈은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항상 믿음의 언어로 재갈 물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적으로도 강제적으로도 의도적으로도...

항상 말씀 안에서 믿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온 인격과 삶의 인생은 그 믿음의 말한 대로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비유는 4절 말씀에 배의 키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배도 작은 키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말하는 대로 운명이 가고, 말하는 대로 인격이 가고,

말하는 대로 모든 생활이 흘러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말과 행동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과 신앙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말이 곧 나 자신입니다.

말 그대로 운명지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내 뱉을 때마다 항상 늘 깊이 생각하면서 조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마지막 셋째로 불에 비유합니다.

6절 말씀에 "혀는 곧 불이요(6절),"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불을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 불이 붙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성냥개비 하나 그어대는 것은 간단하고 쉽습니다.

그러나 그 여파는 엄청납니다.

우리는 흔히 말 하나의 실수로 일이 일파만파 큰 사건으로 번지고 나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일이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무심코 내 뱉은 한 마디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당연히 몰라서 그랬습니다.

알았으면 그랬겠습니까?

그러나 말 한마디가 그토록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합니까?

말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141편 3절에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하나님께서 항상 나의 입을 지켜 주시사 나의 말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죄 짓게 하거나...

그 말로 나 자신에게 죄를 짓게 하거나...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입을 지켜달라고 말의 실수가 없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심지어...

잠언 18장 2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 한마디로 죽고 살 수 있는 있음을 명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말 한마디로 구원받을 수 도 있고...

나의 말 한마디로 사망에 이를 수 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입니까?

우리가 입으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믿음이 담겨진 마음의 고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반대로 입으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면 사망으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여러분의 입술과 말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갈 먹이며...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서 오직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을 고백할 수 있는...

항상 좋은 말...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만 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말을 통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시험들게 하시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며... 우리의 입술을 통해 주의 이름만을 찬양하며 천국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하늘의 풍성한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8.06

본문: 야고보서 3:1-2절

 

제목: 말한 대로...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말에 대한 좀 더 깊은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정말 말이란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과 생각과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 입니까?

말 속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모든 인격이 모든 신앙과 믿음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렇게 까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 속에 그 사람의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가득한 것이 말로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의 실수를 하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을 한 번 돌아봅시다!

여러분의 말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의 실수를 하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 번...

속된 말로... 사람을 씹는 말을 합니다.

말로 다른 사람을 비난합니다.

말로 상대를 비방하고 판단합니다.

말로 원망하고 부정하고 낙심하고 한숨 쉽니다.

그것 뿐 입니까?

말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말로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말로 하나님을 불신합니다.

말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연약함과 모든 불신앙들이 우리의 말로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어!

하나님이 하실 거야!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가 아니라...

이것이 가능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나의 불행한 지금의 상황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바뀔 수 있을까?

항상 의심하는 말로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여러분 자신의 말하는 모습을 돌아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은 절대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말로 했다는 뜻은 이미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가득 차 있다는 증거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앞에서 말의 실수가 없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의 실수가 없도록 주의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모두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들으신 그 말대로 하나님께서 시행하십니다.

축복이건 저주건 말 한 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느 집에 가든지 복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누구에게든지 복을 빌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복을 받을 사람이면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복이 네게 돌아오리라...

복 받을 말 이외에는, 축복의 말 이외에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 입니까?

말이 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진짜 미운 것은 아니지만 말을 듣지 않아서 화김에...

"집 나가라고 말하면"

집을 나갑니다. 자식이 집을 나간 뒤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업이 망한다고 말하면" 실제로 사업이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에 서 계신 것같이 항상 조심해서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사람 가운데서 하는 우리의 모든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대로 행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명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축복의 말,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말 한대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의 믿음의 분량 안에서...

그대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오직 믿음이라는 귀한 씨앗을 품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 귀에 선한 축복의 말만 들려 드릴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말을 들으시고 그 말한 대로 역사해 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 마음속에 말씀이라는 귀한 믿음의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그 말씀의 능력에 힘입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과 축복만을 선포할 수 있는 믿음의 말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의 말과 기도 속에 오늘도 선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8.05

본문: 야고보서 3:1-2절

 

제목: 말을 많이 하지 말라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야고보는 3장 말씀으로 들어가면서...

1장에서 언급했던 말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 만큼 우리의 신앙생활과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말이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그렇습니다.

말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1. 첫 번째로 1절 말씀에 보니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입니까?

말을 많이 하는 직업입니다.

그 당시 랍비들은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말을 많이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죄를 짓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죄입니까?

1) 알고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에는 아는 죄와 모르는 죄가 있습니다.

알고 짖는 죄가 있고 모르고 짓는 죄가 있는데, 알고 짓는 죄가 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12:47-48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처럼 여러분!

선생된 가르치는 사람의 죄가 곧 알고 짓는 죄입니다.

잘 가르치면 좋으련만 사람이기에 항상 바른 가르침을 줄 수 없습니다.

말 실수 할 때가 있습니다.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알면서 아는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가르칠 때도 있습니다.

바로 남은 가르치면서 나는 행하지 않을 때, 죄가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을 천국에서 보기 힘든 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라고 천국으로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천국으로 가는 방법대로 살지 않아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렇게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마 23:1-13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2) 두 번째는 고의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야고보가 선생되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고의적으로 잘못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진리를 잘 모르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인냥 사람들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가르치는 사람이 복음의 진리를 왜곡되게 잘 못 가르쳤다고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르게 가르치지만 자신은 그대로 살지 않아서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갈망하는 영혼들을 못 들어 가도록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말해주어야 하는데...

모르는 것 까지도 잘 아는 냥 가르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잘 못 가르치는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복음의 진리에 위배되는 것을 진리인 냥 가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 가운데 구원에 대한 다원주의를 가르는 것이 그 실제적인 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야고보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이 그토록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기에 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정말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6절)"

남을 잘못 가르쳐서 실족케 하는 것은 엄청난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르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동시에 위험한 일입니다.

잘못 가르쳤을 때에 남의 운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남의 일생을, 영생의 문제를 망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 마 18장 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예수님은 인간의 실수와 허물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잘 못 가르친 결과는 바로 잘 못 가르친 선생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오늘 2절에서 야고보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된 사람이 말을 가장 많이 하기 때문에...

그래서 가장 많은 죄와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기에 선생이 되지 말라고 권면을 하면서...

이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죄를 조금이라도 덜 짖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에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말에 실수를 하지 않도록 절제하며...

가능하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여러분 스스로가 먼저 실천하고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겸손히 우리가 배우고, 듣고, 깨달은 말씀에 대하여 먼저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의 입술의 모든 말을 성령 하나님께서 주장하여 주셔서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감사와 믿음의 말만 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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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04

본문: 야고보서 2:20-26절

 

제목: 믿음의 세 가지 요소!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아브라함과 같은 온전한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믿음의 세 가지 요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좀 더 구체적인 신학적인 용어로 말씀드리면

첫째로 믿음에는 '노티티아' 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믿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는 그것입니다.

둘째로 '아센수스' 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믿어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기 때문에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피두키아' 의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믿기 때문에 힘을 낼 수가 있고, 행동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이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역사 하면 가장 효과적이지만

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마음도 불안합니다. 평안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는 마지막 한 가지 의지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일단은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의지적 결단입니다.

신앙을 의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제적인 신앙의 삶에 있어서 신앙의 마지막 보루는 어디까지나 의지입니다.

우리의 결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에는 지적인 요소가 있고 감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분대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아는 대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을 의지라고 단정할 수 는 없지만 마지막 결정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기 싫지만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의지적으로 순종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할 수 만 있으면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지만...

결국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의지적으로 순종을 결단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 했을 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을 때에...

아브라함이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대신 죽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어찌 이 귀한 아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는가?

마음이 찢어지고 찢어지는 수 천 번, 수 만 번 갈등이 오고가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국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순종합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다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의지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이란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감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믿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진정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믿기에 순종하는 믿음, 순종이 따르는 믿음...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지혜를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도 믿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를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지식과 이성과 감정과 모든 흔들리는 마음을 다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바로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으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오늘 본문 22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행위를 결론짓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함께 일하고'...

헬라원문에서는 '수네르게이'입니다.

'순'이라고 하는 말은 '함께'라는 뜻이요,

'에르게이'는 '일 하다'라는 뜻으로 영어의 '에너지'가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수네르게이'라는 말은 '함께 일한다' '같이 효력을 낸다' '협력하여 역사 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무슨 뜻입니까?

믿음이 힘을 주어서 행함이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행위를 유발합니다.

믿음이 힘이 되어서 행함을 실천하게 됩니다.

믿음이 거름이 되어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헬라어 원문의 '에델레데'라고 하는 이 말은 '완전하다'라는 뜻의 과거형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완성되었다'라는 뜻입니다.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완성되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행하면서 믿음이 완전해집니다.

행함으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믿음이 점점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경험이요 구체적인 일입니다.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믿음이 어떻게 역사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맨 처음에는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순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제 그 행위 안에서 깨닫게 됩니다.

'아!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셨구나' '여기에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구나'...

행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또한 행하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기를 잘했구나'

'맞구나, 이 길에 생명이 있구나'

내 마음 속에서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라운 기적적인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구나!

기쁨과 감격과 감사가 넘쳐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정리해보면 실제적인 순서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의지가 먼저요, 다음이 지식이요, 마지막이 감정입니다.

우리의 실제적인 신앙과 믿음의 순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대하여 먼저 머리로 알고, 느끼고, 그 다음에 순종하려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아무리 머리로는 많은 지식을 알고 있어도...

행함이라는 실천이 없으면 그 진리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도 오직 하나님 말씀에 먼저 순종함으로 그 순종 안에서 하나님의 참 사랑의 마음을 깨닫고 더불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참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게 되고...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 안에서 진정한 하늘의 참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마지막 구절인 26절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은 죽은 몸입니다.

썩어서 필경은 내버려지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도 그와 같습니다. 행

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산 믿음이라면 반드시 행함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그 행함이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결론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신앙, 단순하고 감정적인 신앙을...

지식적으로 머리로만 입술로만 고백하는 믿음을 책망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라고 하는 열매를 맺을 때에 비로소 그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행함과 믿음이 함께 하고 믿음이 행함과 함께할 때에...

우리의 믿음은 온전하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실 때에...

오직 하나님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머리와 마음과 몸으로 하나님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을 하나씩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시고 그 순종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체험하며 그 안에서 하늘의 참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8.01

본문: 야고보서 2:20-26절

 

제목: 진정한 믿음의 증거!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을 통해 진정한 믿음은 행함과 함께할 수 있어야함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예로 아브라함 역시 믿음으로 행하는 순종의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토록 인정해 주신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습니까?

이 믿음에 대하여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적어도 세 가지 큰 사건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확증했습니다.

1. 첫째로, 히브리서 11장 8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순종합니다.

어디로 가라는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동쪽으로 가라든가 서쪽으로 가라든가, 막연한 방향 지시도 없으셨습니다.

덮어놓고 '떠나라'고만 하십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떠납니다.

중요한 사실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완전하고 온전한 순종과 믿음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떠났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준다고 약속의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10년을 기다려도 아들이 안 생깁니다.

그래서 편법으로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분명한 아브라함의 실수였습니다.

이 이스마엘을 통해서라도 대를 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잘못했다. 네 아내 사리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라는 자꾸 늙어갑니다.

90세가 다 되어갑니다.

단산하고도 오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나는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으로서는 도저희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창 18:10,11)."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사라가 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니... 정말 하나님 웃기시는 분이야!

하나님을 정신 나간 사람취급해서 생각했습니다.

왜 웃느냐고 하나님께서 추궁하시자 웃지 않았다고 얼버무리지만...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창 18:15)"하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책망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아들을 낳으리라"라고 거듭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를 믿었습니다. 믿고 아내를 가까이합니다.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로마서 4장 18절-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3. 셋째로, 믿음으로 얻은 그 귀한 아들이삭을 하나님께서 바치라 하셨을 때,

그때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최종적으로 확증됩니다.

아들을 드리는 시험을 통해 온전하고 완전한...

하나님 말씀에 100% 순종할 수 있는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됩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러분! 이 말씀을 여러분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가막힐 일 아닙니까?

진정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시험거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과거의 부족한 믿음을 회상하며 끝내 순종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에서 이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믿음으로 아들을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으로서는 하나님께 충분히 할 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이 아이를 통하여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아들 아직 장가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을 지금 바친다면 이미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렇게... 왜 할 말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아브라함을 인정해 주신 참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 내가 알았다...”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에...

이러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 보좌 앞에 달려갈 수 있는 순종의 사람...

믿음의 열매를 맺는 천국백성이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증거를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릴 수 있는 귀한 믿음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 동안도 성령님께서 우리의 중심과 마음을 주장하여 주셔서 오직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31

본문: 야고보서 2:20-26절

 

제목: 행하는 믿음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좀 더 깊이 있게 '믿음과 행함'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거짓된 믿음이 무엇인지?

외식적인 믿음이 무엇인지?

율법주의적인 믿음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말로만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는 신앙은

지식뿐인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

이웃에게도 덕을 끼치지 못하는 믿음...

아무 열매가 없는 믿음...

이러한 믿음은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믿음은 행함과 하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뜻은 온전한 믿음이란?

마음속에 성령으로 감동감화되어 변화된 심령으로...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작은 것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명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믿음의 부정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1. 말로만 하는 믿음에 대하여...

2.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믿음에 대하여...

3. 떠는 믿음에 대하여...

4. 죽은 믿음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는 믿음의 긍정적인 면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고보는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행함이 있는 믿음, 참 믿음이란 어떤 것이냐?

바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분명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의 개념입니다.

이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행함을 생산하는 못하는 믿음,' '행함'의 결실을 맺지 못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행함'이라고 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생각하는 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행함과 실천을 생산하고 있는...

행함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는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신앙의 질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신앙의 양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열매 맺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질 때에...

자신을 구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 불어 던지시겠다고...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다시 말씀드려서 열매가 없는 믿음은 “헛것”(20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구약에 나타난 역사적 사건들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생 라합에 대해서는 잠깐 언급했고 주로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원래 허물이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은 있었지만 믿음대로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면서 종종 넘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도록 계속 믿음의 훈련을 이어가셨고...

마침내 아브라함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이 믿음을...

오늘 야보고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21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러한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여겨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아브라함과 같은 행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행하는 진실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 속에...

오늘도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거짓된 믿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행하는 진실한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오늘도 말씀 안에서 성령 충만케 하여 주시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과 주장하심에 이끌려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30

본문: 야고보서 2:14-26절

 

제목: 믿음이냐? 행위냐? 3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세 번째로 믿음과 행위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인 동시에

특별히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행위로,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이것이 아닙니다.

이미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미 믿고 교회에 나오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임을 먼저 명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님을 믿고, 또 특별히 잘 믿으려고 하거나 잘 믿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면 반드시 이 야고보서 말씀을 읽고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진정 참 신앙이 무엇이며 바른 신앙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살아있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거짓된 믿음, 외식적인 믿음, 외식적인 믿음, 율법주의적인 믿음에 대하여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에 대하여 믿음이냐 행함이냐를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믿는 사람에 대하여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야...

진짜 믿음이라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본문에서 말씀하는 행함은 율법적인 행함이 아니요 어디까지나 은혜적인 행함입니다.

질적으로 평가하는 행함...

내면적으로 평가하는 행함...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안에서만이 평가할 수 있는 행함입니다.

단지 외적으로 눈으로 보이는 것만 평가되는 행함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믿음과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행위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속 뜻은 사실상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22절 말씀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마침내 믿음과 행함이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의 문제를 놓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지혜로운 설명을 합니다.

'바울은 믿음에 앞선 행함을 논했다' (바울이 행함을 비판한 이유에 대하여...)

믿음과 관계없는 행함, 믿음 이전의 행함, 예수 믿기 전에 가지는 행함,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행함을 논했다는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행함은 율법주의자의 행함이요, 안 믿는 사람들의 행함이요,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의 행함이므로 단어 자체가 야고보의 그것과는 다르다.'

바울의 것은 믿음에 앞선, 믿음 이전의 행함이요...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은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라는 의미 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문제를 가장 바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믿기 전의 행함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믿은 다음에 행하는, 그 행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용어는 똑같은 '행함'이지만...

그 내용에서 보면 둘의 개념이 완전히 다름 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율법적이요, 하나는 은혜적입니다.

하나는 예수 믿기 전의 행함이요, 하나는 예수 믿은 다음의 행함입니다.

하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행함이요, 하나는 구원받은 사람의 행함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행함이요 하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드러내는 행함입니다.

또한 신학자 헤이즈는 말합니다.

"바울은 뿌리를 보고, 야고보는 열매를 보았다"

독일의 신학자 본훼퍼도 말합니다.

"믿음과 행함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행함과 믿음, 믿음과 행함은 항상 함께 있다.

믿음만 중시하게 되면 자칫 값싼 은혜에 빠지게 된다."

여러분! 값싼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은혜” 은혜만 강조하게 되면 은혜를 값싸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받아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모습입니다.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손해 보는 일에는 희생하려는 모습이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이러한 값싼 은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입버릇처럼 “믿음, 믿음” 하면서 값싼 믿음에 빠지는 모습이 오늘 현대의 신앙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반대로 행함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행위를 통하여 율법주의에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모두 잘못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본훼퍼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오늘 야고보는 이렇게 믿음의 종류를 언급하면서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1. 첫째가 "믿음이 있노라"하는 믿음입니다.

곧 말로만 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도 행위도 없습니다.

2. 둘째가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는 가짜믿음이기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 원하시는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심령의 거듭남과 인격과 삶의 거듭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셋째가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곧 "떠는 믿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떠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무서운 줄을 알고 떱니다.

하나님께 벌받을까봐 떨고 저주받을까봐 떨고, 죽을까봐 떨고 지옥갈까봐 떱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아이쿠, 또 죄를 지었구나.'

사업이 좀 잘못되면 '십일조를 안냈더니 망하나보다.' 민감합니다.

자동차 사고라도 나면 '주일날 교회에 안나갔더니 사고가 났구나' 합니다.

떠는 믿음입니다. 벌벌 떱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믿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려고 노력은 하지 않고...

단지, 벌 받을까봐 두려움과 떠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경외하는 모습은 좋은 것이지만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떠는 믿음은 바른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는 망각하고 심판만을 생각하는 떠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4. 넷째로, 죽은 믿음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옛날 있었던 믿음이지 이제는 없는 믿음입니다.

이제는 시험 들어서 교회도 출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진정한 예배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죽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에서 믿음 생활하다가 불교로 배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이 죽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믿음에서 파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본문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참 믿음은 무엇입니까?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22절)."

바로 믿음과 행함이 하나 되는 신앙이...

참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다음 시간에 좀 더 깊이 있게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흔히 신앙생활 속에서 논쟁하는 믿음이냐? 행위냐?

바울이 말한 믿음과 야고보가 말한 믿음은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음을 명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온전한 믿음이 있으면 바른 삶의 열매와 행위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주의적인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아래서 행하는 믿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전제된 믿음을 말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외식적인 믿음이 아닌 진정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가운데 행하는 행위를 강조한 것입니다.

서로 같은 믿음과 행위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그에 합당한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거룩하고 정결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원합니다. 오늘도 말씀의 능력으로 충만케 하여 주셔서 오직 성령님 인도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29

본문: 야고보서 2:14-26절

 

제목: 믿음이냐? 행위냐? 2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믿음과 행위에 있어서 주의할 것...

4. 넷째로, 믿음에 대한 무서운 잘못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망하는 마음입니다.

'행함은 중요한 것이기에 내가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습니다.

이제 이 정도는 기도하고 봉사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지!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막14:38)."

여러분!

이러한 모습에는 다른 사람을 볼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결심을 하고 곧 장 내일 그 결심을 포기해 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습관이 거듭 반복 됩니다.

'내일부터는' '내일부터는'...

그러다가 또 자포자기 합니다.

내일 부터는 무슨 일어도 말씀을 꼭 3장씩 읽으리라...

내일 부터는 무슨 일어도 30분 시간 내서 기도하리라...

실천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구제불능이다.'

절망해버립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면 좋아서 박수치는 것은 누구입니까?

마귀 사단입니다.

행하는 것도 좋고, 행함을 위해서 애쓰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를 채점하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받는 은혜를 저울질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나의 존재, 나의 믿음을 내 스스로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 때문에 절망하게 되면 나에게 신앙적으로 무너지는 틈새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 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단 마귀가 조금만 유혹하면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매일, 매 순간 겸손히 하나님 앞에 죄인 된 나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매 순간 이 죄인을 사랑하여 주신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함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러한 삶을 살기위해서...

우리는 모든 신앙생활 속에 겸손할 수 있어야 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만큼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더욱 좋은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씩 노력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새벽기도에 나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내가 오늘 새벽기도에 나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선한 일을 한 가지 했습니다.

나는 남의 입에 들어간 것조차 빼앗던 욕심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내가 남에게 작은 것을 베풀고 주었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절망과 사단의 유혹에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는 행할 수 없다. 원하는 만큼 행하지 못한다. 이만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무슨 뜻입니까?

불만이 없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 불만이 없어야 합니다.

불만이 쌓이면 반드시 절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진정한 믿음은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내 믿음을 자꾸만 스스로 평가하려고 하기에 절망합니다.

남이 내 믿음을 평가하는 것에 신경 쓰고, 체면으로 신앙생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절망합니다.

나 스스로, 그리고 남이 바라보는 기준에 못 미치기에 스스로 절망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잘 못된 믿음입니다.

참 믿음은 항상 겸손히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겸손히 인정하고...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믿음으로 행한 것에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만큼 믿음으로 행했습니다.

내일은 조금만 더 큰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스스로 절망하는 믿음이 아니라...

겸손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믿음으로 작은 순종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사단의 유혹에 미혹되어 나 스스로 정죄하는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베푸신 모든 환경과 삶의 여건 속에서 겸손과 감사함으로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의 중심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28

본문: 야고보서 2:14-26절

 

제목: 믿음이냐? 행위냐? 1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은 야고보서 전체 말씀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성경전체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주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믿음이냐 행위냐 하는 문제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때마다 논란을 불러 일으켜온 이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오늘 본문 26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결론적인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절)."

여러분! 성경공부 모임에서 자주 발생하는 거친 토론이 되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이냐 행위냐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믿음이냐? 행위냐? 이렇게...

나누어서 2분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믿음이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 하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반쪽만 옳은 말입니다.

또한 '행함 없는 믿음이 무슨 소용이냐'하고 행함을 강조 하다보면 믿음이 빠져나가고,

그래서 결국은 믿음 없는 행함을 강조하게 되는 율법주의적인 행위만을 이야기하게 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반쪽만 맞는 말입니다.

이러한 믿음이냐 행위냐 하는 신앙의 문제 때문에 학자들은 물론이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도 많은 신앙의 문제들을 야기 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문제는 야고보가 목회하던 그때도 오늘도 끊임없이 중요한 이슈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말할 때에...

다음의 네 가지 원칙을 먼저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1. 첫째로, '믿음만이 중요하다, 행함은 필요 없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착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교파라고 말씀드리지 않지만...

사이비 교파 가운데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믿음만 있으면 빚진 것을 갚지 않아도 된다'...

믿음만 있으면 과거에 지은 모든 삶의 허물들은 상관없다...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 과거의 죄도 현재의 죄도 미래의 죄도 모두 사함 받았다,

천국 가는 티켓을 받아놓았으니 걱정할 것 없다,

이제부터 행함은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믿기만 하면 된다.

믿음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행함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것이 잘 못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2. 둘째로, 행함만을 강조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믿는 것으로는 안 된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행함을 전적으로 강조합니다.

바로 살아야 한다,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본주의에 빠지고 공로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한 것처럼...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3)"

이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했을 때에는 '오직 믿음으로'였지만,

얼마 지나보니 '행함으로, 오직 행함으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행함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행함을 바로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그 행함을 가지고 평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로주의에 빠지고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선행을 사다리 삼아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는 어느새 사라지고 맙니다.

3. 셋째, 행함대로 믿음을 평가하려는 모습을 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함은 외형적인 것이요 형식적인 것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사람을 놓고 평가할 때를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에게 얼마나 믿음이 있는가'라고 질문할 때...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 사람의 내면적인 중심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사람의 내밀한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의 믿음을 어떻게 판단하게 됩니까?

"저 사람 수요저녁에 교회에 나왔던가?"

"새벽기도회에는 나오는가?" "십일조는 잘하는가?"

"몇 사람이나 전도를 했는가?" “교회에서 봉사는 얼마나 하고 있지?”

이런 것으로 평가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을 다 지키고 행하면 과연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서 열심을 내는 것으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단지 그것을 행했다고 열심을 냈다고 반드시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선행과 구제와 헌금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과부의 2 렙돈을 어떻게 판단하고 계십니까?

액수 그대로 보지 않으시고 그 사람의 마음과 중심을 보셨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눅 21:3)."

부자들이 교회에 나와 연보궤에 헌금을 넣습니다.

가난한 과부도 넣습니다.

그것을 보시고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 더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 21:4)."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의 전부를 바쳤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많은 액수의 헌금보다 더 휼륭하고 큰 믿음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밖으로 드러난 행위에 따라서 평가받아서도 평가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 말씀은 내일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결국 온전한 믿음이란? 사람의 그 어떤 생각과 판단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계속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이란?

그 마음의 중심과 그 중심안에 있는 믿음으로 행하는 모습을...

하나님의 시각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한 마음과 진실한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여러분의 믿음과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상달 될 수 있는 귀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말씀 안에서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시고 그 믿음으로 실천하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동안도 오직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하나님의 사랑만을 증거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25

본문: 야고보서 2:10-13절

 

제목: 심판 받을 자처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은...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기에 내가 나 자신을 의롭게 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미 교만이라는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의롭게 여길 수는 없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죄인 된 나를 의롭게 여겨주셨다는 그 놀라운 긍휼만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11절 말씀에...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온 율법을 잘 지켜나간다 할지라도...

한 가지 죄를 범하면 전에 행한 모든 의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많은 의와 공이 있었어도...

한 가지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아니라 죄인입니다.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익한 종의 비유를 들어서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 어떤 공로와 의를 내세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인이기에...

우리의 의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오직 예수님의 핏 값으로 사신 공로이기에...

우리의 대답할 말은...

오직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법을 행할 때에 어떠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까?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할 때마다...

행동할 때마다...

심판받을 자처럼 겸손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유의 율법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공과 의를 내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놀라운 긍휼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또한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사랑으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그 사랑의 마음으로 말도하고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야고보가 말하는 자유의 율법대로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를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을 기억함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내 이웃을 사랑하는 진정한 최고의 법 없이...

행하는 모든 우리의 행위와 말은 거짓이요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요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13절 말씀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자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체험하며 또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한 자로서...

우리의 이웃에게 그와 같은 사랑으로 긍휼을 베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긍휼 없는 심판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만달란트 비유의 말씀의 핵심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부디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이 말씀을 명심하고 또 명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고 오히려 구원의 은혜 아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으로 천국문으로 들어가면서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긍휼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들에게 온전히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을 우리들에게 대속물로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최고의 법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바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기에 순종하는...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형제와 자매와 가족들과 모든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원수 같은 사람을 보면 사랑할 수 없지만...

내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똑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여 주신 귀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긍휼의 사랑을 품고...

오늘 주신 말씀대로 하나님 원하시는 최고의 법을 지키며...

여러분의 모든 언행심사를 통해 하나님만을 자랑할 수 있는...

하나님만을 높일 수 있는 여러분의 귀한 삶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긍휼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그 사랑을 믿음으로 실천하기 않고 순종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긍휼을 우리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크고 높고 위대하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24

본문: 야고보서 2:8-9절

 

제목: 최고의 법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고보는 2장에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실제적인 신앙생활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어나가야 하는가?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의 주된 주제는 계속해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정신은 어디서 출발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이웃을 차별하지 않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대하고 생각하고 판단할 때에...

어떤 생각을 먼저 할 수 있어야 합니까?

저 사람도 죄인입니다.

하지만 저 사람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와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로 용서하시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과 똑같이...

저 사람도 오직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똑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저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같은 신분의 위치에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처럼 저 사람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이 벙어리든 장님이든, 건강하든 병들었든, 상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난하든 부자이든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남자냐 여자냐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외모로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얼굴이 잘생겼다 못생겼다, 옷을 잘 입었다 못 입었다...

이런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직장에 있느냐, 어떤 지위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반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 안에서...

직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해 왔는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외모와 가진 것...

혹은 그 사람의 재능과 옷 입은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지 않았는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반성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회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입니까?

9절 말씀에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바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차별을 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 것인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답은 8절 말씀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말씀하신 것처럼...

최고의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야고보가 여기서 말하는 최고의 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지키며 살아가기 원하시는 최고의 법은...

가장 먼저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의 이웃을 그 사랑으로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최고의 사랑의 법을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이 전제되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의 놀라우신 긍휼의 사랑을 내가 체험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우리들에게 대속제물로 허락하신 그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체험해야 합니다.

먼저 무조건적으로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끼고 체험적으로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사랑하여 주신 우리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최고의 법이라고 오늘 야고보는 말씀하면서...

이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지만...

그 최고의 법을 어기고 사랑해야 대상을 차별하면 무시하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법을 어기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한 죄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어떻게 최고의 법을 지켜야 합니까?

우리의 이웃을 어떠한 자세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까?

쉽게 말씀드리면...

인격적인 동등한 자세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화)

에이브러햄 링컨이 하루는 집무 중에 외출을 하려고 나서는데 수위실 앞을 지나다가 서류 하나 잊고 나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링컨은 수위를 보고 부탁했습니다.

"자네, 올라가서 내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좀 가져오게나." 수위는 부탁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서류를 가지고 내려와 보니 대통령이 수위인 자신의 의자에 앉아서 수위를 보고 있었습니다.

수위는 너무나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각하, 각하께서 그 자리에 앉아 계시면 어찌합니까?"

얼떨결에 말했더니 링컨 대통령은 천연스럽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아, 무슨 소릴 하는 겐가! 자네가 내 심부름 하는데 내가 자네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똑같은 것입니다.

남이 나를 위해 일해 주는데 나도 남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하는 링컨의 마음이 드러나 있는 일화입니다.

온전한 인격적인 동등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너무 쉽게 착각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은 자리가 높아진 것이지 사람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기에...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심지어 한 나라와 국가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법을 어기는 죄를 범한다는 사실입니다.

큰집에 산다고 큰 사람이요 작은 집에 산다고 작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믿음의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명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최고의 법을 따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여러분의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며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귀한 복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진정 우리 심령 안에 하나님의 최고의 법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의 이웃을 섬길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23

본문: 야고보서 2:5-7절

 

제목: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됩시다!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 우리는 하나님 보다 이 세상의 물질을 더욱 사랑하는 이 땅위의 부자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자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려운 결정적인 약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우선 부자는 자기를 구별하기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과 어울리거나 같이 앉는 것이 싫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 곁에는 앉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입은 것과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그 다음부터는 그 옷을 입지 않습니다.

사실 돈은 많이 있지만 어떤 마음이 가난한 자의 마음입니까?

자기 것과 똑같은 것을 입은 사람을 보면...

"야, 너도 입었냐? 나도 입었다.

야, 기분 좋구나!" 나도 좋은 옷을 입고 너도 좋은 옷을 입었구나!

나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고 평등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등함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부자들의 이러한 못난 마음 때문에 비싼 물건일수록 잘 팔린다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별것 아닌데도 값만 비싸면 잘 팔립니다.

특별하고 싶은 부자의 본능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것을 가난한 사람이 가졌으면 이걸 견디지 못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 더 큰 것을 손에 넣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 중에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2.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그 형편을 복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복을 받고 있다” 이런한 심리적인 마음입니다.

이 세상의 물질적인 축복만을 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서의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3. 세 번째로는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고까지 착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부하고 넉넉하고 사업이 잘 될 때에...

모든 상황이 평안할 때에...

그때에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하며 밤을 새워서라도 기도해보신 적 있습니까?

부자는 이렇게 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부자는 사업에 실패하고 몸에 병이 들고 실의에 빠지면 그때 가서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무릎을 꿇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약점이 있지만 부가 전적인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서도 겸손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돈은 없으면서도, 아무 것도 가진 것은 없으면서도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최종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마음가짐의 문제입니다.

재물이 많으면서도 생각이나 마음은 가난한 사람!

이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가진 것이 많으나 적으나 이 세상 것을 초월해서 하늘의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중심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말씀은 아주 실제적으로 말씀합니다.

5절ㅍ말씀에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입니다.

지위나 신분이나 물질이 다 세상 것이지만

본문에서는 우선적으로 물질의 가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난한 자를 택하시는 이유와 결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시고,

둘째,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셋째,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결과적으로 이것은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가운데서 당신의 사람을 택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이 이 가난한 중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가난할 때, 건강할 때보다 병들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그 선택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부할 때가 아니요 건강할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어느 때에 더욱 강하게 느끼십니까?

하나님의 주도적이고 주권적인 구원을 어느 때에 뜨겁게 느끼십니까?

우리는 흔히 건강하고 부하고 사업이 형통할 때에 하나님을 더 잘 믿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가 가난하고 실패했을 때...

나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에...

더욱 강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게 되고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가난할 때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 두 손 다 들게 되고 더 뜨거운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고...

진정한 하나님의 뜻과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성숙한 믿음으로 성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요한 믿음으로 성숙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더 사모하는 진정한 하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가난한 자입니까?

첫째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어느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실제로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믿음에 부요한 자,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부한 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난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물질이 있으나 없으나...

우리의 가진 것에 상관없이...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진짜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많아도 믿음에 부요한자요...

물질이 없어도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실제로 물질이 많은 자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더욱 큰 결단과 믿음의 각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직 하나님께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믿음의 부요한 자, 하늘의 부자가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신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구원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도...

믿음에 부요한 자의 모습으로 천국소망을 품고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귀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이 세상에 대하여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믿음으로 하늘 부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늘도 하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와 축복의 열매를 풍성히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22

본문: 야고보서 2:5-7절

 

제목: 차별하는 잘못된 기준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면서,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에...

“사람을 차별하여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는...

우리가 사람을 차별하는 가장 쉬운 예로써...

물질의 소유 여부에 따르지 말고...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대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형제자매를...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동등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자인 것 하나님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많이 배운 것 하나님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이웃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성도이면 충분합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면 충분합니다.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 밖의 것, 부자냐? 가난하냐?

유명인이냐? 신분이 낮은자냐?

많이 배운 사람이냐? 못 배운 사람이냐?

이 모든 것은 전혀 그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데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보자마다 그 사람을 판단하는 조건이 바로 그 사람이 주는 첫 인상이기 때문에 실수할 때가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계속해서 실제적인 신앙생활면에서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고...

둘째는 서로 교회 안에서 외모로 그 사람의 신분으로 자리를 구별하지 말라고...

그리고 셋째가 이러한 악한 생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재판장이 유죄다 무죄다 하고 죄수를 정죄 하듯 남을 판단하고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내가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내가 남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도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함부로 남을 자신의 생각만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남의 행동을 두고 험담을 합니다.

자신은 당사자가 그런 행동하는 것을 본 적도 없으면서 소문만 듣고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합니다.

거기다가 한 걸음 앞서 나가기까지 합니다.

한술 더 떠서 남의 속마음까지 판단하기까지 합니다.

그 사람이 틀림없이 이러저러한 생각을 가지고 그 행동을 했을 거라고,

자신이 상대의 입장이라도 된 것처럼 독심술이라도 있는 양 그 사람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합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흔히 드라마를 보면 얼마나 많은 오해의 장면들을 보게 됩니까?

주인공이 그 뜻으로 한 행동이 아닌데도...

주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순간 오해를 살 행동만을 가지고 사건이 크게 번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은 실제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 상대의 입장이 아닌 이상...

단지 그 사람의 행동만을 보면서 어떻게 그 사람 그럴 수 있지?

비판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우리의 못된 죄의 습성에서부터...

악으로 좇아난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의 본문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판단할 때에 그 사람의 지식이나 인격 같은 것은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것은 얼마동안 겪어 보고 나서야 시간이 지나봐야 그 사람에 대하여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의 물질적인 여건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냐? 부한 사람이냐?

이것은 쉽게 드러납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겉모습만 보아도 금방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는 이것이 물질적인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 제일 중요한 조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물질적인 부의 문제를 다시 신앙의 관점에서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이 부와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예수님에게서 그 정답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1. 먼저 누가복음 7장 2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은 분명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6장 20절에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난한 자의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가난과 부유가 복음과 어떻게 관계되어 있는지...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도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한 관원이 주님께 질문했습니다.

'주여, 내가 어찌하면 구원을 얻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율법을 지켜라.'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여러분!

이 관원은 정말 교만했습니다.

자신이 조금 가진 것이 있다고 자만했는지?

예수님의 질문에 대뜸 자신이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좋다'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너 가진 것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젊은 부자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는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영생과 재산! 어느 쪽입니까?

뭐! 재산이 문제입니까?

만일 이 청년이 "좋습니다, 예수님! 내가 가진 재산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다 팔아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당장에 다 팔고 예수님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을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짜 다 팔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래 너의 마음이 진정 물질보다 하나님께 있으니...

네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권면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청년은 영생보다도 재산을 택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보다 자신이 가진 재물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보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와 명예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눅18:24-25)"

부디 여러분 모두는...

오늘 말씀을 함께 묵상하시면서...

절대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기준, 물질적인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판단하는 그 사람 속에는 더욱 큰 세상의 교만과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으로 다시 우리의 죄악들을 헤아리시고,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만 겸손히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룰 수 있는 귀한 복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교만한 마음을 내려 놓게 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만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겸손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21

본문: 야고보서 2:1-4절

 

제목: 그리스도를 대하듯 하라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이웃과 옆에 있는 성도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에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1. 첫째로 우리는 보통 사람을 이용가치로 보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마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짜리”로 본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을 볼 때...

“이 사람을 친해두면 내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부터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돈 있는 사람은 높게 봐주고 돈 없는 사람은 눈 아래로 봅니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볼 때 물건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2. 둘째는 이웃을 내 유익의 도구로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내게 기쁨을 주면 좋은 이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나의 유익, 내 생활의 한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정말 이기적인 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셋째는 인도주의적으로 사람을 보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관계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고 하는 관계입니다.

정말 사람 자체를 존중하고 존엄하게 생각하는 관계입니다.

이 만큼이면 꽤 훌륭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것으로도 모자랍니다.

4. 그러기에 우리는 넷째로 하나님 앞에서 같은 자녀관계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가 자녀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자녀요 상대도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나와 너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입니다.

형제자매관계이므로 그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아직 부족합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 이웃을 그리스도 대하듯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윤리의 핵심이요,

하나님 앞에서 인간관계의 핵심입니다.

로마서 14장 15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이웃을 형제자매를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신 그 핏 값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볼 때에도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웃을 볼 때에도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 여덟 남매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의 일곱이 어린 막내 하나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일곱이 번갈아가면서 막내를 금이야 옥이야 안아주곤 합니다.

어째서 그토록 지극 정성으로 돌보냐고 물어보았더니,

어머니가 그 여덟 번째 딸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많은 나이에 해산을 하다보니 그 수고가 지나쳐서 눈을 감았는데,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남긴 말이 "내 대신 이 아이를 잘 키워달라“는 부탁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 남매는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이 막내를 보는 것입니다.

막내를 바라보면서 어머니 생각하고, 어머니 생각하면서 어린막내를 바라보고...

그러니 이 막내를 소중하게 키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역시 우리가 이웃을 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저 사람 위하여 죽으셨다”

이렇게 생각하고 상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위하여 엄청난 값을 치르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이웃을 대하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 하나가 천하보다 귀중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을 개역성경에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1절)"

개역개정에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야고보 당시에도...

또한 오늘 우리의 교회 안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구체적인 실예까지 들어가면서...

우리 신앙인들이 범하는 실수와 허물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2-4절 까지의 말씀입니다.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쉽게 말씀드리면...

돈 좀 있는 사람이 교회 오면...

명예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 교회 오면...

우리 역시 그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 차별화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재벌이 있거나...

유명한 정치인이 있거나...

하면 우리도 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명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 부터라도...

내가 누군데 이 정도는 교회에서 대접받아야지!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대할 때도...

빈부의 격차를 떠나서...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서...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사신 구원받은...

한 형제자매임을 기억하며 차별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만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옆에 있는 성도들을 바라보실 때 마다...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람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시면서...

주님 대하는 겸손한 마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주님의 사랑을 품고 여러분의 이웃과 성도들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의 형제 자매를 대할 때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함께 나눈 영적인 가족임을 기억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과 사랑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07.18

본문: 야고보서 2:1-4절

 

제목: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야고보는 본문말씀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의 바른 인간관계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입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오늘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이유를 분명

우리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본주의로 생각해서...

사람을 평등하게 생각하라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분명한 그 이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 보면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그렇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믿음이 있기에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될 때에 나와 이웃과의 관계도 바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수직적인 관계가 바로 되고 나서 그 다음으로 수평적인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수직적인 것이 근본이요 수평적인 것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착각하면 안 됩니다.

수평적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수직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관계를 바로 맺음으로써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그 결과로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가 바르게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 누군가와 사이가 잘못되어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인간관계의 문제가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나는 아무 문제없는데...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는 성도들이 나를 못살게 굴고...

나를 모함하고 비난하고 나를 이유 없이 흉보고 미워합니까?

만일 이러한 인간관계의 문제가 있으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은...

사이가 잘못되어버린 그 사람에게 잘해보려고 선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새삼 친절하게 더욱 상냥한 어조와 태도로 대해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찾아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써보지만

인간관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온전히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못되었는데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사람에게 더 이상 매달려서는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온전한 해결방법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성도로서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믿음을 점검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살지 않았는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먼저 다른 사람을 비난한 것은 없었는지?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내 생각으로 먼저 판단하고...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이유 없이 오해하고 시기한 모습이 없었는지?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를 먼저 점검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겸손입니다.

사실 우리의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나를 먼저 바라보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가 말한

"믿는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이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받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것입니다.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믿음이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입니다.

믿음은 내 의지가 아니요 내 지식이 아니요 나의 노력으로 가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고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믿음은 얻은 것이지 나의 공로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에게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고...

그래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길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선행적인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하나님의 의가 있었기에...

오늘 나의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믿음을 받았다는 것, 곧 믿음을 영접했다는 말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영접했다는 말입니다.

내 의나 내 공로가 아니요 하나님의 의를 내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의롭다 함을 얻은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의롭다 함을 얻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영접한 결과로 하나님께서 귀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의인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잔치상을 모두 차려주셨고...

우리는 그 잔치 음식을 먹기 위해서 단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영접만 하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과의 수평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다른 사람을 볼 때에 어떤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까?

내게 아무런 교만이 없습니다. 교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내가 나의 공로로 있는 것이 아니니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볼 때에 부드럽습니다.

덕과 긍휼이 있고 겸손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게 됩니다.

왜 입니까?

내가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을 저울질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인간됨을 죄악들을 저울질 하셨다면...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내가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또한 저울질해서는 안 됩니다.

일 만달란트 빚진 자는 자신이 탕감 받은 액수가 얼마인지?

망각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웃의 허물을 자신의 잣대로 다시 저울질 했기에...

하나님 앞에서 다시 불려가는 신세가 되었고 그 탕감 받은 것을 모두 다시 책임져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일 만 달란트라는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빚을 진 죄인임을 기억하면서...

오늘 하루도...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한 죄의 모습을 먼저 돌아보며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은혜로운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만 나를 바라보고 상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겸손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